1990년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시조창은 지역에 따른 사소한 가락의 차이에 따라 서울 중심의 경제(京制)와 지방의 향제(鄕制)로 나누인다.
향제엔 경상도 지역의 영제와 전라도의 완제(完制) 및 충남의 내포제(內浦制) 등이 있다. 영제는 다른 계통에 비해 씩씩하고 늠름하여 경상도 사람의 기풍이 나타나는 것으로 평가된다.
구체적으로는 평시조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에서 요성하다가 직선으로 뻗을 때 쿡 찔러서 내려간다든지, ‘높다하되’를 ‘높다허어허되’로 마디를 준다든지, 매끄럽게 흐르지 않고 ‘하늘아래 모이로오, 오오다’처럼 ‘오,오오’로 층을 주며 단락을 짓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고종 때 영제시조의 3대명창으로는 경북 군위의 고영태, 경주의 이영서 및 경남 의령의 손덕겸을 꼽았으며, 그 밖에 김영도 · 이계석도 이름이 났다.
지정 당시의 보유자였던 이기릉은 손덕겸의 제자인 김영도에게 전수받아 40여 년간 영제시조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였고 1996년에 타계하였으며 그의 제자 박선애(朴善愛)가 1997년 9월에 예능보유자로 재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