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정재영의 10대조 정중기(鄭重器)가 입향하면서 짓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 정일감(鄭一鑑)이 완성시켰다고 전한다.
현재 건물은 사랑채인 산수정과 안채, 사당의 세 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앞에 3칸의 솟을대문이 따로 세워져 있다. 대문채는 3칸으로 솟을대문의 서칸에는 헛간의 마판(馬板)이 있고 동칸에는 마부 등이 대기하던 방이 있다.
대문 앞쪽으로는 담장으로부터 꺾어드는 짧은 고샅이 구성되어 있어서 대문의 노출을 어느 정도 감추고 있다. 산수정은 사랑채로서 독립된 건물인데 정침의 동쪽 사랑방에 연하여 있다. 이러한 구조는 안동 · 봉화 · 영덕 지방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자집에서 보편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산수정은 합각이 앞쪽에서 보이도록 측면이 전면이 되는 포치술(布置術)을 보이고 있어 정면이 전면이 되는 보통의 사랑채와는 다른 배치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특이한 배치는 주변의 다른 집들보다 월등히 멋진 다락집을 구성하였다는 강조의 의식이 강력히 작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다락은 2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쪽 1칸의 둘레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다. 다락의 안쪽 1칸은 구들이 설비된 온돌방이다. 이러한 구성은 욱실(燠室)과 양실(凉室)이 모두 갖추어진 것으로 17세기경부터 민간에 널리 보급된 것이다. 사당채는 동북쪽에 따로 담장을 두르고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구성하였다.
정침은 □자형의 평면인데 이는 ⊓형 앞쪽에 一자를 더하여 완성된 형태이다. 따라서 지붕의 구성도 ⊓형에서 완성된 팔각지붕을 一자 첨가부분에서 가적지붕처럼 연결하고 있다. 이러한 지붕은 봉화 · 영덕 · 영양 · 울진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유형이다.
안채는 대청 3칸이 중앙에 놓이는 전형적인 배치법을 따랐다. 대청의 서쪽에는 2칸 규모의 안방이 있고 그 앞쪽으로 2칸의 부엌이 있다. 부엌 다음 칸은 마루로 서쪽 날개로 덧달아낸 공간으로 출입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는데, 현재 서쪽 날개부분은 없어졌다.
이 마루방의 오른쪽으로 아랫방 · 부엌 · 중문이 연결된다. 중문 다음 방은 사랑방이 되고 여기에 날개 달린 방도 사랑방이 되면서 사랑채에 이어진다. 이 방은 일종의 복도가 되는 셈이다.
대청의 동쪽, 즉 안방의 맞은편에는 머릿방이 있고 그 아래에는 마루방, 고방이 연결된다. 이 고방과 중문 다음 방 사이에는 작은 문이 있어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하고 있다. 안마당은 □자를 이루고 있으며 장독대가 설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