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4월 28일영친왕과 이방자와의 혼례식이 일본 동경(東京)에서 개최되었다. 이 날 사이토(齋藤實) 조선총독 등 일본 정ㆍ군ㆍ경 수뇌부, 친일매국노 이완용(李完用) 등 역적무리가 이 혼례식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즈음 서상한(徐相漢)이 재동경조선고학생동우회(在東京朝鮮苦學生同友會)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여야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이런 정략결혼의 소식에 접하였다.
서상한은 동지와 같이 그 해 2월부터 4월 10일까지 동경시내 수십처를 왕래하면서 사제폭탄을 제조, 사이토 등 이 식에 참석하는 침략의 수뇌부를 폭살, 제거할 준비를 완료하였다.
서상한은 윤재풍(尹在豊)ㆍ양주영(梁柱瑛)ㆍ조동식(趙東湜) 등 20여명과 이 식의 폭파를 위한 폭격대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예행연습 중 4월 10일 잡혀 서상한은 금고 4년형을 언도받았고, 윤재풍 등 20명은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