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영화학이라는 개념을 갖게 된 것은 1950년대 초반에 프랑스의 소르본의 영화학연구소가 생겨나면서 질베르 코앙세아는 영화학 ‘filmologie’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영화를 텍스트로 해서 연구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확립하였다.
그는 영화와 언어와의 관계에서 영화를 언어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영화언어는 단어 없는 문장과 같아서 문법을 갖지 않은 언어로 문법 대신에 철학을 가진 언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1965∼1970년에 고급 연구학교에서 영화기호학 연구와 국립 사화과학연구소의 영화의 구조주의적 분석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크리스티앙 메츠와 레이몽 벨루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영화학이 1960년대 중반에 미국 내에서 인문과학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고, 그 후에 미국에서의 연구는 영화를 한 시기의 사회적 흐름에 대한 지표로 취급하면서 시작하였다.
대중예술이 대중교육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 때부터 미국·캐나다·영국·스칸디나비아, 최근에 프랑스와 독일에서 영화이론과 영화사는 학문의 일부가 되었다.
영화이론의 중요한 두 흐름에는 주체위치이론(subject-position theory)과 문화주의(culturalism)가 있다. 주체위치이론과 문화주의는 영화에 대한 논의가 사회·역사·언어·정신의 거대한 요소들을 묘사하거나 설명하려는 도식들 속에 틀지워진다는 점에서 ‘거대이론’이다.
대조적으로 이론적인 의무에 기대지 않으면서 더 지역적인 영화에 근거한 문제들에 달라붙은 세번째의 신중한 흐름이 존재한다. 이 중간 단계 연구에 대한 논의도 있다.
1970년대는 영화에 근거한 기호학·정신분석학·텍스트분석, 그리고 페미니즘이 등장한 시대이다. 1980년대 후반은 후기 구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복합문화주의 그리고 게이·레즈비언·퀴어 연구와 같은 ‘정체성의 정치학’ 그리고 부수적인 연구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1970년대의 학문적인 영화연구는 작고 초라한 영역이었다. 영화사는 정전으로 불려진 영화들로 이루어진 ‘영화언어’의 발전으로 취급되었다. 영화비평은 대개 해석적이고 판단적으로 플롯·인물·주제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영어권 사람들에게 영화이론은 고전이론가인 아른하임·에이젠쉬타인·바쟁 같은 사람들의 영역이었다. 이 당시에 풍미한 개념적인 구조는 작가주의였다. 소련(지금의 러시아) 몽타주 이론이 이전에 그랬듯이 작가주의는 영화이론·비평·역사학을 변형시켰다.
작가주의로 영화는 두 가지 노선에 따라 논의되었다. 새로운 예술로서의 영화와 근대 대중사회의 특징적인 정치적 문화적 힘, 바쟁과 카이에 드 시네마의 비평가들은 1920년대 미학의 매체 특수성에 대한 주장과 그 이후의 영화문화에서 좌파의 정치적 합의 연결선이었다.
그러나 작가주의 노선은 전통미학의 한 전제를 강조하였다. 앤드류 하리스는 프랑스의 작가주의를 미국으로 끌어들여 작가이론이라고 하여 미국영화들을 분석하였다.
학문적인 영화연구의 등장과 함께 작가주의의 인간주의적인 변형은 공격을 받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이론적 야심은 프랑스 구조주의의 탄생이다. 이 지적인 운동은 대륙에서 힘을 얻고 있었고 1960년대 말 영어권 나라에서 논의되었다.
레비스트로스의 저작이 영어로 번역되고 메츠의 구조주의적 기호학이 널리 알려졌다. 구조주의는 사회학적인 비판의 차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었고, 대중매체의 생산품에 적용될 때 더욱 비판의 특면이 한층 강조된다.
롤랑 바르트의 ≪신화학≫의 영어판 번역이 이루어지면서 기의나 기표, 열호나 내포의 개념을 위해 광고와 TV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구조주의이론은 새로운 세대에게 선행자들과 그들을 구별할 방법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이론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추상적인 사고를 선호하는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 구조주의이론이 가진 설득력의 상당부분은 영화의 개별적인 실체에 대한 적용가능성에서 비롯되었다.
BFI의 평론가들이 만들어 낸 ‘작가 구조주의’, 다른 평론가들에 의한 서부극과 갱스터에 대한 구조주의적인 연구, 아마 영구적인 영향은 영화를 신화나 의식과 유사하게 취급하는 구조주의자의 해석 모델일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이항 대립개념, 즉 영화가 이항대립의 상상적 해답을 제공한다는 개념은 학문적 비평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 토마스 샤츠의 헐리우드 장르 연구, 내러티브 구조를 해석하는 이런 이항 접근은 ‘영화 구조주의’의 지속적인 유산이다.
순수한 구조주의는 영어권 영화학에 알튀세의 마르크시즘, 라캉의 정신분석학, 메츠의 기호학, 텍스트분석에서 비롯된 사고들을 유포하였다.
1970년대 초기와 중반에 프랑스의 이론가들은 국제적인 프로그램 속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후기 구조주의 활동은 영미의 지적 생활 일반에 바르트, 라깡, 데리다, 푸코와 다른 이들의 영향력이 넓어지는 것과 일치한다.
새로운 영화이론은 영화의 사회적 정신적 기능에 대해 영화 이론가들이 사회적 조직과 정신적 활동에 대한 몇 가지 기본 가정 위에 영화 개념들을 세웠다. 이 가정들은 언어, 사회적 활동에서 주체의 개념들에 의존한다.
대부분 이런 이론에 따르면 주체는 개인적인 인간이 아니며 즉각적인 의미의 정체성이나 자신도 아니다. 주체성은 인간의 개인적인 정체성이나 인성이 아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사회적인 것이다.
미리 주어진 의식이 아니라 획득된 것이다. 주체성은 재현의 체계에 의해 구성된다. 이런 논의의 틀 속에서 생물학적 개인은 그의 욕구가 재현의 과정 속에서 조직되고, 만족되고 억압됨으로써 주체가 된다. 분리된 주체, 라카의 상징계 영화는 관습적인 약호들을 수단으로 텍스트에 세계를 재현하는 기호학적 시스템으로 여겨졌다.
기호학적인 체계로 영화는 의식과 무의식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시작하면서 분리된 관객을 분리된 주체로 고용한다고 생각될 수 있었다.
이 상호작용은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되었다. 스티븐 히스, 크리스티앙 메츠, 로라 멀비, 장치이론 이런 방법들 속에 자배적인 영화-헐리우드와 반대 세력-는 영화적 약호들과 발화적 실천을 통해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만족들을 제공하여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보여졌다.
대부분의 이론가들은 영화의 기술, 서사구조, 발화의 과정, 재현의 분류를 통해서 이 과정이 이데올로기적 목적들을 실행한다고 믿었다. 이 이론에 의하면 대안적이고 방해하는 영화제작은 대안적인 동일화를 제공하고 지배적 영화의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해체하면서, 상상적 동일화를 저지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영화이론은 역사적인 연구에 대한 그 영향력이 가벼운 반면에 실천적 비평에는 즉각 영향을 주었다. 주체이론에 대한 반대는 논리적인 결점을 지적하지 않았으며 주체구성에 선행하는 인지 과정, 라캉의 주제개념에서 오인, 페미니스트 좌파의 비판, 포스트모더니스트의 비판, 영화사 연구를 실행하였다.
1990년대에는 문화주의 이론이 등장하였다. 이론가들은 이데올로기와 사회를 문화와 대체하기 시작하였다. ‘문화’는 전통적인 마르크시즘에서 ‘상부구조’로 여기는 사회적 행위의 모든 국면을 포함하게 되었다.
영화의 문화적 차원에 대한 조사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주체위치이론에 의해 펼쳐진 영화의 이데올로기적 효과에 대한 관심은 영화가 가진 다양한 사회적 유용성을 둘러싼 1950년 이전의 논의의 부활로 볼 수 있다.
‘문화’는 크라카우어, 벤야민, 브레히트, 길버트 셀레즈, 루수 베네딕트, 마가레트 미드, 그레고리 배트슨, 새리스와 ‘무비’지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중요한 토의사항이었다.
그러나 현대 영화연구의 문화주의는 자의식적으로 이론적이다. 주체 위치이론과는 달리 문화주의는 넘치는 문화적 매카니즘이 영화의 사회적 정신적 기능을 관리한다고 생각한다.
문화주의는 연구의 목적이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를 통해 만들어지는 사용임을 강조하면서 주체위치이론과 구별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 결과 모든 종류의 문화주의자들이 수용에 대한 연구를 장려하며 여기서 관객들은 흔히 영화를 그들의 문화적인 합의로 돌린다고 생각한다. 사실 문화연구의 입장에서 전폭적인 영화의 개념은 저항적인 관객의 개념에 굴복하였다.
문화주의자는 전폭적인 의미를 텍스트 안에 위치시키기보다 관객들 안에 위치시킬 수 있다. 저항적인 독자들은 독해할 수 있고 독자에 대한 그러한 독해는 그 자체로 역사화 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문화주의는 주체위치이론이 데리다와 후기 바르트의 ‘후기 구조주의’에 의해 공격받고 있을 때 등장하였다.
페미니즘, 게이·레즈비언·양성의 모임들, 비 교조적 좌파, 포스트모던 미학, 그리고 복합문화적 운동들의 강력한 기세에 문화주의의 경향은 영미의 지적 환경에서 중심적인 힘이 되었다.
주체이론과 문화이론은 거대이론을 구성한다. 이것들은 사회·역사·정신, 그리고 의미의 본성에 대한 전제들에 의존한다. 이 각각의 전제들은 19세기의 지적인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영화와 영화적 맥락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은 추상적인 교리들을 위해 이미 제공된 과정들을 예시하면서 이 이론들에서 흘러나온다. 전통적인 학문적 학풍에 가까운 거대이론은 깊이 있는 연구가 집중되었다. 이와는 다른 중간단계의 연구는 경험적이고 이론적인 수입에 질문을 던진다.
즉, 거대이론의 많은 연구가와는 달리 경험적이 되는 것은 이론적이지 않음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간단계연구의 종류로는 영화감독, 장르, 국가적 영화(National cinema)에 대한 연구, 1970년대 중반에 등장하여 1980년대 ‘수정주의적’작업으로 이어지는 역사학적 경향이 있다.
또한 신영화사의 종류에는 영화산업의 산업적인 측면에 대한 연구 즉 경제적 힘과 경영의 원칙들이 어떻게 영화제작, 배급, 상영의 제도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질문하였으면, 영화상영의 관습들에 대한 연구, 그리고 영화의 양식적 역사에 대한 흥미에 관한 연구가 있다.
모든 형태의 중간단계 연구는 문제지향적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전통적으로 분리된 연구의 영역을 결합할 수 있다. 중간단계의 연구는 영화미학, 제도 관객반응의 전통적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수정주의 영화 역사학의 등장은 중간단계 연구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주체성, 이데올로기, 또한 문화 일반이 아니라 개별적인 현상을 이론화하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