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라는 말은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주로 개신교의 종교행사를 할 때 쓰이고, 유교의 제사, 불교의 불공이나 선(禪)에 대해서는 넓게 쓰이지 않는다. 예배는 본래 ‘숭배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위들’을 의미했지만, 그 범위가 종교적인 행동 전부를 포괄한다.
예배행위를 일으키는 심리적 태도, 그러한 심적 태도를 유지시키는 믿음, 그리고 그러한 믿음을 굳게 만들어 주는 기능도 겸한다. 그래서 예배의 형식에는 제의(祭儀)와 금기(禁忌), 성례전적(成禮典的) 의식들과 금욕적 의식, 묵상과 봉헌, 축제와 고행 등을 포함한다.
심적 태도로서의 예배는 경외심(敬畏心)과 사랑, 두려움과 감사의 표현을 조화시키고, 종교심의 계발과 신앙심의 확립을 촉진한다. 믿음으로서의 예배는 신화와 철학, 신조(信條)와 과학, 열정과 진리에 대한 존중심을 폭넓게 꾸며 구성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숭배, 가령 조상숭배라든지 자연숭배라든지 하는 모든 외경과 봉사와 종순(從順)의 형식 전체를 망라하게 된다. 이것은 동시에 예배가 얼마나 광범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을 의미하며, 단일한 정의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배는 확실히 종교적 행위, 특히 그 중에서도 유한성(有限性)과 죄의식(罪意識)을 가진 자아가 절대자요 완전자요 거룩한 존재인 신에 대하여 섬기고 찬양하고 기원하는 형태를 지적한다.
인간의 문화사와 예배의 형태는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가장 원시적인 예배의 형태는 공포감과 신비감에서 우러나온, 초월적인 존재자 혹은 신격(神格)에 대한 굴복과 기원 심리에서 발생하였다. 샤머니즘의 일반적인 성격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격적인 신을 말하고 유대교나 기독교에 오게 되면, 신의전달(神意傳達)과 인간의 응답이라는 형식의 만남으로 예배의식이 설정되고, 공포의 대상으로서의 신이 아닌 감사와 찬양과 기도의 대상으로서의 인격신이 그 예배의 대상이 된다.
예배는 인간사회의 가장 오래된 전통 보존의 형태를 취한다. 인간사회가 원시종교의 문화 속에서 신에 대한 외경과 그 명령 및 신율(神律)에 따라 사회규범이 결정되던 때이기 때문에, 예배는 인간사회 구조의 원초적 틀을 형성하고 또 계승시킨 가장 오래된 전통으로 활동하게 된다.
따라서, 그것은 뚜렷한 사회 공동행위로서의 의식을 갖추어 보존하게 된다. 예배의식이야말로 그 경건의 심정과 함께 인간이 하나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근원 체험을 주는 기관이 된다. 그 의식에는 금욕과 참여, 갈망과 종순, 마술과 종교 따위의 구분을 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도 역사의 발전에 따라 형태 변천이 있다. 가령 원시종교에서는 거의 본능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나, 한 단계 더 발전된 상태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변화나 사건과 관련 있는 의식들이 형성된다.
이 단계에 속한 의식들은 출생·혼인·죽음과 같은 통과제의(通過祭儀) 형식의 예배 행위들이다. 이 밖에도 자연의 계절 변화와 관련된 의식들도 있다. 파종과 추수 때의 예배의식이 그런 것들이다.
그 다음 단계의 문화에서 종교의식은 사회적 조직을 반영하고 유지하는 기구로 구형(構形)된다. 공동체가 발전하고 다양해짐에 따라서 그 안에서의 활동과 금기, 성스러운 의무 등에 의한 사회 규약이 실용화된다.
이런 것들이 공동체를 결합시키고 유지시키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도덕이 의식과 밀접한 상호관계를 갖게 되며, 도덕에 의한 사회 보존이 신적 명령이라는 종교적 재가(裁可)에 연결된다.
다음 단계는 문화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단계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동기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가장 현대적인 단계에서의 의식은 세속화의 강렬한 추세에 따른 종교의 비판 때문에 다시 개인화되기 쉽다.
따라서 은밀한 예배, 한 동지적 집단의 결속 행위, 개인의 기도와 같은 형식으로 굳어져, 개인적인 종교체험이나 도덕적 계발, 감사와 기도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
한국 기독교에서의 예배는 대개 그 예배 대상의 특수한 신학 때문에 크게 세 단계를 거쳤다고 할 수 있다. 처음 단계는 하나님을 성신(聖神)으로 예배할 때의 예배의식으로 대개 1885년에서 1907년까지의 시대로 볼 수 있다.
그 때 예배는 종교적인 신비적 체험, 감격과 변화에 중점을 둔 의식 행위였다. 새로운 종교에 대한 전향과 입교(入敎)의 선교시기에 그런 것은 필연적인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다음 단계는 1908년부터 1930년대 초반으로 그때 예배 대상은 성부(聖父)로서의 하나님이요, 따라서 창조자·역사통치자·심판주로서의 하나님으로 세계 역사 속에 내려와 역사를 진리와 정의로 향하여 이끌어 가고, 일본제국과 같은 악의 세력을 심판하는 하나님, 그런 신에 대한 예배가 특징이었다.
그래서 찬송가도 「십자가 군병」이라든지 「주의 군대」라고 하는 것들이 애창되었고, 성경도 전투적인 『구약성서』가 많이 읽혔다.
그런데 1930년대 이후부터는 민족의 시련과 고난, 그리고 그 고난이 갖는 삶의 의미와 부활의 대망, 고난의 속죄적 의미 같은 것을 명상하면서, 십자가에 달린 아들[聖子]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예배, 그것을 증보자로 체험하는 예배가 핵심을 이루어 갔다. 이용도(李龍道) 때의 예배형식이 그 전형적인 것이었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예배에 대개 찬양과 송영, 죄의 고백, 간구와 기도, 말씀의 선포, 감사의 봉헌과 헌금, 성도의 교제, 그리고 찬양과 송영의 순서로 그 예배의식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예배가 신에 대한 외경 행위와 함께 이웃에 대한 봉사라는 사실은 예수그리스도의 교훈 속에서 강조되어, 오늘의 한국 교회 예배신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