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0.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교촌리의 이름 없는 절터에서 1966년에 출토되었다. 머리 위로는 높다란 보관을 썼으며, 얼굴의 양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어깨에까지 흘러내렸다.
얼굴은 갸름한 계란형으로서 마멸이 심하여 세부의 표현이 불분명하지만, 눈 부분이 약간 튀어나와 있고 볼을 팽팽히 묘사하여 생동감을 준다. 왼손은 어깨 앞에까지 들어 지물을 잡은 모습이며, 오른손은 다리 쪽에서 천의(天衣)를 잡고 있다.
목 앞에서 늘어진 천의자락 위로 U자형의 목걸이가 장식되었고, 이와 연결된 영락장식이 배 부분까지 늘어졌다. 이 영락은 허리를 두른 요대(腰帶)의 고리장식 부분에서 세 갈래로 갈라져 발목까지 흘러내렸다.
또한, 왼편 허리에서 나온 또 하나의 영락이 사선을 그리며 겹쳐지다가 오른쪽 무릎의 원형고리 부분에서 다시 합쳐진다. 대좌는 현재 상부의 앙련(仰蓮)만이 남아 있고, 그 아래로는 촉 형태의 돌기가 붙어 있다.
허리는 매우 가늘고, 목과 허리 부분을 튼 미숙한 삼곡의 자세를 충실히 표현한 점이나, 화려한 영락 등에서 통일신라의 보살상임을 느끼게 한다.
한편으로, 삼국시대에 제작된 공주 의당 금동보살입상(국보, 1989년 지정)이나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 1997년 지정)과 양식상 유사성이 보이는 것은 이 보살상이 백제지역에서 출토된 사실과 연관이 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