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순 ()

현대문학
인물
일제강점기 「방랑의 마음」, 「혁명」, 「때때신」 등을 저술한 시인.
이칭
선운(禪雲), 공초(空超)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4년(고종 31)
사망 연도
1963년
본관
해주(海州)
출생지
서울
정의
일제강점기 「방랑의 마음」, 「혁명」, 「때때신」 등을 저술한 시인.
개설

서울 출신.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처음에는 선운(禪雲), 뒤에 공초(空超). 『폐허(廢墟)』 창간호에서는 성해(星海)라는 필명을 쓰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오태연(吳泰兗)이다.

생애

어의동학교(於義洞學校: 지금의 효제초등학교)를 거쳐 1906년 경신학교(儆新學校)를 졸업하였다. 그 뒤 1912년 일본으로 건너가 1918년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종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오상순은 원래 기독교 신자로서 1919년 교회 전도사로 있었으나 그 뒤 불교로 개종하여 1921년 조선중앙불교학교(朝鮮中央佛敎學校), 1923년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전국 여러 사찰을 전전하며, 참선과 방랑의 생활을 계속하면서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활동사항

오상순의 문학 활동은 1920년 폐허 동인에 가입하여, 김억(金億)·남궁벽(南宮璧)·황석우(黃錫禹) 등과 친교를 맺으면서 『폐허』 창간호에 자신의 인생관과 문학관을 담은 수필 「시대고와 그 희생」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글에서 오상순은 자신의 ‘폐허의식’이 새로운 생명의 창조와 결부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어 1921년 『폐허』 2호에 「힘의 숭배」·「힘의 동경」·「힘의 비애」·「혁명」·「때때신」·「돌아!」·「가위쇠」 등 시 17편 및 평론 「종교와 예술」을 발표함으로써 폐허 동인 중 『폐허』에 가장 많은 작품을 게재한 시인이 되었다. 이 밖에 1920년 『개벽(開闢)』 11월호에 「의문」·「어느 친구에게」·「나의 고통」 등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보아 오상순의 시는 어휘 구사가 생경하고 언어의 감각적 사용에도 그리 능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방랑(放浪)의 마음」(조선문단, 1935) 등 몇몇 작품에서는 사물의 심상화(心象化)를 성공적으로 시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오상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으로 「아시아의 마지막 밤풍경」을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은 호흡이 길고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여러 사실을 차례로 제시하는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상훈과 추모

1956년에 예술원상, 1962년에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생전에 발간한 시집은 없고 1963년 제자들에 의하여 『공초오상순시집(空超吳相淳詩集)』이 간행되었다. 유해는 수유리에 안장되어 있고 1963년 여기에 「방랑의 마음」 첫머리를 새긴 시비가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현대시인연구』(김학동, 새문사, 1996)
『한국근대시사』상(김용직, 한국문연, 1986)
『한국현대문학사탐방』(김용성, 국민서관, 1973)
『신문학사조사』(백철, 신구문화사, 1949)
「공초와 구상」(박희진, 『아세아』, 19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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