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만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헌납, 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영석(永錫)
춘헌(春軒)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47년(인조 25)
사망 연도
1700년(숙종 26)
본관
동복(同福,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
주요 관직
수찬(修撰)|헌납(獻納)|승지|대사헌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헌납, 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영석(永錫), 호는 춘헌(春軒). 이조참판 오백영(吳百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 오단(吳端)이고, 아버지는 호조판서 오정일(吳挺一)이다. 어머니는 사인(舍人) 정호선(丁好善)의 딸이다. 예조판서 오정위(吳挺緯)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6년(현종 7) 사마시에 합격하고, 1676년(숙종 2) 정시문과에 장원하여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이 되고, 이어 지평(持平)을 지냈다. 1679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수찬(修撰)·부수찬·부교리(副校理)·헌납(獻納)·교리 등을 역임하고, 다음해 이조좌랑을 거쳐 1689년 승지에 올랐다.

이듬해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부당하다 하여 다시 승지에 머물렀다. 지조가 깨끗하고, 겸허 담백하였다. 1694년 당화(黨禍)를 입어 용천·강서 등지로 유배되니, 전후 6여년간에 이른다. 유배 중에도 경학(經學)에 힘썼으며, 문장에 뛰어났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식산집(息山集)』
『국조방목(國朝榜目)』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