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93.5㎝. 몸체에 새겨진 명문에 동화사(桐華寺) 스님들이 공동으로 발원하여 삼백 근의 중량을 들여 오어사에서 정우(貞祐) 4년, 즉 1216년(고종 3)에 대장(大匠) 순광(順光)이 만들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S자형으로 굴곡을 이룬 용뉴(龍鈕)는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가는 목에는 비늘과 갈기가 매우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있다. 용의 이마 위로 솟아난 뿔이 앞뒤로 갈라져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용의 입안과 오른발 위로 보주가 표현되었는데, 특히 발 위의 보주는 칠보문(七寶文)처럼 투각 장식되었다. 연당초문으로 장식된 음통에 마치 새 깃털 같은 용뉴의 갈기가 함께 부조되었고 음통 꼭대기에는 작은 보주가 둘러져 장식되었다.
천판(天板)의 바깥 테두리에는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복엽의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를 높게 돌출시켰고 그 아래 상대(上帶)와 종구(鐘口) 쪽의 하대(下帶)에는 활짝 핀 연꽃과 연꽃을 줄기로 연결시킨 연당초문(蓮唐草文)을 유려하게 부조하였다. 상대 아래의 연곽(蓮廓)에는 연화 위에 높게 돌기된 연꽃봉오리가 9개씩 배치되었으나 일부는 부러졌다.
연곽과 연곽 사이에 해당되는 몸체에는 구름 위에 무릎을 꿇고 합장한 보살좌상을 앞뒤 두 곳에 부조하였다. 머리에 보관을 쓴 보살상의 양팔을 감고 두광 위로 솟구친 세 가닥의 천의는 매우 섬세하지만 약간 부자연스럽고 경직된 모습이다. 보살상 사이에는 당좌를 배치하였는데, 당좌는 원형의 자방 주위에 여의두형의 엽문을 두르고 다시 그 바깥을 이중의 도식적인 연판으로 장식하였다.
이 종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한쪽 당좌 위로 위패 모양의 명문곽을 만들어 그 안에 ‘옴마니파드메훔’으로 보이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을 돋을새김한 점이다. 이처럼 몸체에 범자문을 새긴 것은 무술명종(戊戌銘鐘, 국립부여박물관 소장)과 같은 극히 일부의 13세기 후기 종에서 찾아볼 수 있었으나 이 종으로 인해 1216년에 이미 범자문이 등장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조선시대에 제작된 남양주 봉선사 동종(南陽州 奉先寺 銅鍾, 1469년)에서 볼 수 있는 ‘육자광명진언’의 원류를 이 오어사 동종과 같은 고려 13세기 종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보존 상태가 완전하면서도 양식적으로 매우 뛰어나고 몸체에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명문을 지니고 있어 고려 후기 범종 연구의 자료로서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