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상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형조참의, 남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묵(士默)
  • 약암(約菴)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홍경래의 난
  • 본관해주(海州)
  • 사망 연도1821년(순조 2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형조참의|남양부사|병조참의|예조참판|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 출생 연도1765년(영조 41)
  • 출생지한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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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참의, 남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사묵(士默), 호는 약암(約菴). 한성 출신. 오진주(吳晋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오관(吳瓘)이고, 아버지는 대제학 오재순(吳載純)이다. 어머니는 서명화(徐命華)의 딸이다. 진사 오재륜(吳載綸)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00년(정조 2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承文院正字)를 지냈고, 내각에서 문관들을 강제(講製)하였다. 다음해에는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1802년(순조 2)에는 감찰을 역임하였으며, 이어 3년 동안 정언(正言)·부교리(副校理)·검상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805년에 장령(掌令)을 거쳐 부응교(副應敎)·형조참의·승정원동부승지 등을 지낸 뒤, 이듬해는 이조참의가 되었다. 이어서 영흥·남양의 부사로서 외직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병조·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811년에는 영변부사로 부임하여 당시 가산지방에서 일어난 홍경래(洪景來)의 난에 민병을 이끌고 성을 수비하였으며, 태천지방을 탈환하여 난의 우두머리인 변대익(邊大益)을 주살하는 공을 세웠다.

그 뒤 도총부도총관이 되고, 이후 한성부의 좌윤·우윤을 거쳐 예조참판·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등을 역임하였다. 다시 안동부사로 부임하였으며, 어머니의 상을 치른 뒤 이조참판·부제학(副提學)·도승지·비변사제조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약암집』 10권이 필사본으로 전한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약암집(約菴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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