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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군기시주부, 우영천총, 도총부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사형(士馨)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해주(海州)
  • 사망 연도1619년(광해군 1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우영천총(右營千摠)|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 출생 연도1575년(선조 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범 (전 인간문화재,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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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군기시주부, 우영천총, 도총부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사형(士馨). 할아버지는 현감 오하몽(吳下蒙)이며, 아버지는 춘천부사(順天府使) 오응정(吳應鼎)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4년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직에 등용되고, 1596년에 선전관으로 비변사의 낭관을 겸하였다.

1614년(광해군 6)에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로서 북쪽 오랑캐를 방어하는 방책을 건의하였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1618년에 명나라의 요청에 따라 우영천총(右營千摠)이 되어, 원수 강홍립(姜弘立)과 함께 북정(北征)하였다.

그 해에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로 승직되었다. 이듬해인 1619년에 부차(富車)에서 적을 치던 중 좌우 산속에 매복하고 있던 적 수천명이 불시에 협공해왔는데, 주장 이일원(李一元)이 겁을 먹고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려 하였다. 이에 이일원을 크게 꾸짖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좌영장 김응하(金應河)와 힘을 합쳐서 적은 병력으로 계속 전투에 임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8, 9차례나 싸웠으나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

백마를 타고 적진에 돌진하여 수많은 적을 죽인 뒤에 스스로 칼을 물고 김응하와 함께 자결하였다. 뒷날 현종 때에 이단하(李端夏)의 상소에 따라 참판에 추증되고, 정문이 세워졌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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