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영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개항기 때, 일본을 규탄하는 포고문을 지으며 독립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유교 전통을 수호하는데 힘썼으며, 『석농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석농(石農)
  • 이견(而見)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해주(海州)
  • 사망 연도1944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68년(고종 5)
  • 출생지충청북도 진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금장태 (서울대학교, 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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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개항기 때, 일본을 규탄하는 포고문을 지으며 독립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유교 전통을 수호하는데 힘썼으며, 『석농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충청북도 진천(鎭川) 출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이견(而見), 호는 석농(石農), 아버지는 오기선(吳驥善)이며, 어머니는 전주 이씨이다.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86년(고종 23) 전우(田愚)를 처음 만난 후 수업을 받았고, 1897년 스승으로 섬기기 시작하여 호서 지역의 대표적인 전우 문인이 되었으며, 전우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계승하였다. 전우의 심즉기설(心卽氣說)에 근거하여 한말 성리학의 대표적 인물인 이항로(李恒老)·이진상(李震相)이 태극과 심(心)을 일치시키고 심(心)을 이(理)라 규정하는 입장을 반박하고, 심은 작용이 있으므로 태극을 갖추고 있지만 기(氣)임을 주장하였다.

오진영은 기절(氣節)을 도학(道學)의 핵심적 특징으로 중시하는 의리론을 제시하고, 선비 정신을 지조[志], 즉 기절로 확인하였다. 1894년 동학도(東學徒)에 붙잡혀 고문을 받으면서도 굽히지 않았고, 일제 말기인 1938년 형사에게 체포되자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항거할 만큼 자신의 기절을 지켰다.

1905년(고종 42) 일본의 불의(不義)를 규탄하는 「포고천하문(布告天下文)」을 지었고, 일본이 국가 간의 공법(公法)을 어긴 죄를 문책하여 각 국 공관(公館)에 호소하는 글을 지었다. 또한 3·1운동을 전후하여 파리강화회의(講和會議)와 미국워싱턴회의에 독립청원의 서한을 보내는 일을 추진하는 등, 독립운동에 적극적 관심을 보였으나, 스승의 허락을 받지 못해 실행하지는 못하였다.

이후 오진영은 「기분(記憤)」을 지어 3·1운동을 탄압한 일제의 잔인함에 대하여 울분을 터뜨렸다. 또한 조긍섭(曺兢燮)의 「복변(服辨)」에서 망국(亡國)의 임금인 고종(高宗)을 위한 상복을 거부하자, 오진영은 조긍섭의 입장을 반박하는 「변복변(辨服辨)」을 지어 고종을 위해 상복을 입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오진영은 당시 유교를 비난하는 주장에 맞서 유교전통을 수호하는데 힘썼다. 1920년 권덕규(權德奎)가 동아일보에 글을 실어 공자와 함께 유림의 부패된 의식을 비판하자 「경고세계문( 敬告世界文)」을 지어 항의하고, 1931년 이인(李仁)이 공자를 비난하는 글을 싣자 동료 문인들과 함께 적극적인 성토에 나섰다.

스승의 문집인 『간재사고(艮齋私稿)』의 간행을 추진하다가 문인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전우의 행장(行狀)을 짓는 등, 스승을 높이고 학통을 수립하는 데 진력하였다. 1944년 음성(陰城) 망화재(望華齋)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오진영의 문인들이 안성(安城) 경앙사(景仰祠)에 배향하였다.

문집으로 『석농집(石農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석농집(石農集)』

  • - 『속유학근백년』(금장태·고광직, 여강출판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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