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록(東槎錄)』은 통신부사(通信副使) 강홍중(姜弘重)이 1624년(인조 2) 8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7개월 간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온 내용을 정리한 사행기록이다. 당시 사행은 부사 강홍중 이외에도 정사는 정립(鄭岦), 종사관 신계영(辛啓榮) 등이 동행했다. 일본 기행 기록을 집대성한 『해행총재(海行摠載)』제11책에 수록되어 있다.
책의 내용은 「일본회답사행좌목(日本回答使行座目)」, 「일기」, 「문견총록(聞見總錄)」, 「대마도주서계(對馬島主書啓)」, 「상소(上疏)」 2편, 「별장(別章)」, 통신사에게 준 글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기」의 내용은 다른 사행기록에 비해 영물시(詠物詩)도 없이 주로 사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전편에 걸쳐 자주 언급된 내용은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간 백성의 쇄환(刷還) 문제이다. 이들의 쇄환은 1607년(선조 40) 최초로 이루어졌으나 아직 돌아오지 못한 백성들이 돌아가기를 애걸하기도 하고, 빚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 하여 사행의 일공(日供)으로 갚아주었다는 기록 등이 있다.
이 문제는 정식으로 외교 문제로 제기되어 일본의 협조를 약속받았으나, 실제로는 비협조적이었고 피로인(被虜人) 자신들도 말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쇄환한 피로인 수는 일본에서 21명, 대마도에서 15명에 그쳤다.
「문견총록」에는 일본의 지세, 산물, 의복제도, 음식, 민속, 국례(國禮), 전부(田賦), 전제(田制) 등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특히 1617년(광해군 9) 이경직(李景稷)이 종사관으로 다녀오면서 『상고일기(尙古日記)』를 써서 일본의 지도를 상고하고 들은 바를 모았는데, 이것을 더욱 자세히 기록했다고 한다.
「대마도주서계」는 대마도주 소오 요시나리[宗義成]가 조선의 예조(禮曹)에 보내는 글로, “일본 관백(關白)이 세 사신에게 준 예물을 받지 않고 쇄환 비용으로 쓰도록 대마도주에게 내놓았으니 조선 정부가 타일러 받도록 해 달라.”는 내용이다.
「상소」는 왕이 예물을 세 사신에게 주려고 하자 예물을 도로 대마도에 되돌려주자고 한 내용이다. 「별장」에는 이번 사행에 대한 축하시 5편이 있는데 장유(張維)와 이민구(李敏求) 등의 시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