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신천 출신.
1909년 평양 대성학교(大成學校)의 졸업반 재학중 이른바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이 학교가 폐교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정곤궁을 덜어주기 위하여 군자금 모금요원이 되어 귀국하여 군자금을 가지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1920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서기로 근무하였다. 그 뒤 다시 임시의정원의원 황해도 대표의원이 되었다. 그 뒤 입법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중국 내 각지를 내왕하면서 독립운동에 힘썼다.
한편,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의 도인권(都寅權)·신익희(申翼熙)·차이석(車利錫) 등과 함께 활동하기도 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