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식은 갓 정상의 수식(修飾)을 말하는 것으로 입자가 비교적 단순한 데서 이를 수식하기 위하여 생겨난 것이다. 이는 1370년(공민왕 19) 7월에 백관의 등위를 가리기 위하여 옥·수정 등의 정자(頂子)를 달게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입식은 조선시대에도 계속되어 소요된 장식 재료로써 귀천과 계급을 나누기도 하였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대군은 금으로, 1∼3품은 은으로,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과 관찰사·절도사는 옥으로, 감찰은 수정으로 하였다고 한다. 연산군 때에 이르러 한때 왕이 강권으로 대간들의 정자를 제거시키려고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바로 복고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말기 ≪대전회통≫에 기록된 바를 보면 시임(時任)·원임(原任)대신이나 장신(將臣)은 융복과 군복을 입었을 때 입식에 옥로를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조선 초기의 제도는 말기까지 별 변동 없이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옥로는 조각모양이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점이 특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