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서울특별시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인 제갈공명(諸葛孔明)을 모시는 묘사(廟祠)로 조선시대 말 엄상궁(嚴尙宮)이 처음으로 세웠다는 설이 있다.
경내에는 와룡묘 외에 단군묘 · 제석전(帝釋殿) · 약사전(藥師殿) · 삼성각(三聖閣) · 요사(寮舍) · 문신각(文臣閣) 등이 있어, 와룡묘가 중국 도교계 신령을 모시는 단순한 사당이 아니라 한국화한 종교 혼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민간에서는 이것을 와룡당이라 부르고, 중국신령을 모시는 전래계급의 무당이 즐겨 치성을 드린다. 옛날에는 특히 맹격(盲覡)들이 많이 찾았다. 대상신은 제갈공명과 관운장(關雲長)이다.
《선조실록》에 의하면 1605년(선조 38) 평안도 영유현(永柔縣)에 공식으로 와룡묘를 짓게 하였다 하고, 그 뒤 역대 제왕이 관원을 보내어 제를 올리거나 제문을 지어 보낸 예도 있다. 또한, 사액(賜額)의 예도 전한다. 그것과 서울 예장동의 와룡묘와의 관계는 미상이다.
이 와룡묘는 1924년에 화재를 입어 훼손되었다가 1934년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와룡묘의 내부에는 제갈공명과 관운장의 석고상이 모셔져 있는데 각기 그 둘레가 2m, 높이가 2.5m이다.
그 밖에 대북 · 소북 · 종 등의 의식용 악기가 갖추어져 있다. 와룡묘 전체는 중국 도교의 전래 뿐 아니라 우리 나라 무(巫)의 독특한 면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