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의 성터가 있는 야산(높이 122m)의 북방 약 500m 지점의 구릉 남사면에 있다.
석실의 장축은 서남 25° 방향이며 남면에는 짧은 연도가 있고, 측벽 상부에 벽석을 끼우고 내경시켜 천장폭을 맞졸임한 횡혈식 석실분이다. 부여 능산리 고분과 같이 4벽ㆍ천장ㆍ바닥ㆍ연도를 28매의 다듬은 판석으로 정확하게 조립하였다.
현실은 길이 2.51m, 바닥폭 1.26m의 장방형이고 바닥에는 4매의 판석을 맞추어 깔았고, 천장도 4매의 판석을 맞추어 덮었다. 동서양측벽은 각각 높이 1.0m의 판석 4매씩을 수직으로 세운 다음, 그 위에 두개의 장식을 얹어 장식의 한면이 안으로 기울게 하여 천장폭을 0.77m로 줄였다.
북쪽 뒷벽은 현실폭에 맞추어 높이 70㎝의 방형판석을 세우고 상단벽석은 측벽의 안기울임에 맞추어 위쪽 양귀를 자른 6각형판석을 수직으로 세웠다. 입구 쪽 안벽면은 아래쪽 입구 양쪽구석에 너비 15㎝, 두께 15㎝의 우장석(隅障石)을 세워 입구폭을 줄이고, 우장석 위에 뒷벽 상단과 같이 측벽에 맞추어 6각형판석으로 막았다.
입구는 너비 75㎝, 높이 88㎝인데 바닥에는 현실바닥보다 1㎝ 높게 별석을 끼워 문턱을 이루게 하고 연도에 연결시켰다. 우장석 밖에 연도를 설치하였는데, 너비는 91㎝, 측석은 각각 너비 52㎝, 높이 96㎝이고 그 위에 1매의 개석을 덮고 바닥에도 판석을 깔았다.
연도 입구는 높이 1.08m, 너비 44㎝와 55㎝의 판석 2매를 세워 막았다.
부여능산리 중상총(中上塚)ㆍ서하총(西下塚)과 그 석재ㆍ규모ㆍ수법 등이 동일한 점으로 보아 7세기 전반의 백제고분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