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명은 왕승로(王承老), 자는 숙개(叔玠)이다. 태조의 종제인 왕만세(王萬歲)의 7세손이며, 아버지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왕충(王沖)이다. 부인은 평장사(平章事) 이지무(李之茂)의 딸이다.
벼슬은 의종 때 군기주부동정(軍器注簿同正)으로 시작하여 병부원외랑(兵部員外郎)과 어사대의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에까지 이르렀다. 1170년(의종 24) 무신란이 일어나 문신이 무신에 의해서 도륙될 때, 마침 휴가를 받아 어머니를 보러 가게 되어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 뒤 남경유수(南京留守)로 정사에 전심을 기울였다. 1173년(명종 3) 김보당(金甫當)이 일으킨 반무신란에 가담한 이지무의 아들 이세연(李世淵)과 관련된다고 하여 이의방(李義方) 등이 죽이려 하였으나, 이 때 과부가 된 정중부의 딸과 혼인하여 목숨을 보전하였다.
이의방이 죽자 1174년에 복직되어 금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1202년(신종 5) 어사대부(御史大夫), 1203년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었으며, 문하시랑 동중서평장사(門下侍郎同中書平章事)에 이르러 병으로 사임하였다. 시호는 장경(莊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