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개성(開城)이며, 아버지는 장작소감(將作少監) 왕좌섬(王佐暹)이다.
1010년(현종 1) 8월 거란에 사신으로 간 진적(陳頔)과 함께 억류되었던 사신들의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0년(현종 11) 2월 특별히 관직을 제수할 때 장작소감(將作少監) 왕좌섬(王佐暹)의 아들이었던 왕이보는 예부주사(禮部主事)에 임명되었다.
1039년(정종 5) 정월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진현록(秦玄錄)이 동로병마사(東路兵馬使)로 나갔는데,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서 그의 부사가 되었다.
1053년(문종 7) 10월 국왕이 서경에 행차하였는데, 이때 서경유수사 호부상서(西京留守使戶部尙書)로 있으면서 생양역(生陽驛)에서 왕의 행렬을 맞이하였으며, 공복(公服) 한 벌을 하사받았다.
1057년(문종 11) 9월 최원준(崔爰俊)과 함께 거란에 사신으로 가서 책명(冊命)을 내린 것에 대하여 사례하였다. 1063년(문종17) 8월 겸 서경유수사(兼西京留守使)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