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충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전기에, 상서좌복야, 평장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천은(天隱)
시호
강렬(剛烈)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078년(문종 32)
사망 연도
1159년(의종 13)
본관
개성(開城)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추밀원사판삼사사|수사도참지정사|상서좌복야|평장사|문하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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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전기에, 상서좌복야, 평장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개성(開城)이며, 자는 천은(天隱)이다. 태조의 종제인 영해공(寧海公) 왕만세(王萬歲)의 7대손이며, 상사봉어(尙舍奉御)로 추봉된 왕이민(王里民)의 아들이다. 어려서 수령의 눈에 띄어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107년(예종 2) 과거에 합격한 뒤 관례에 따라 양온승동정(良醞丞同正)이 되었다. 1112년(예종 7) 진양사록 겸 장서기(晋陽司錄兼掌書記)가 되었으며, 제안부녹사(齊安府錄事)·대원부전첨(大原府典籤)·국자박사(國子博士)를 거쳐 진양통판(晋陽通判)으로 있으면서 해적을 물리치는 데 공훈을 세워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가 되었다.

그 뒤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郎)·비서승(祕書丞)·공부낭중(工部郎中)·비서소감(祕書少監)·병부시랑(兵部侍郎)·추밀원좌승선(樞密院左承宣)·이부시랑·지주사(知奏事)·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지추밀원사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142년(인종 20) 3월 추밀원사(樞密院使)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주관하였고, 같은 해 12월 이부상서가 되었다. 1144년 추밀원사 판삼사사(樞密院使判三司事)로 있었는데, 양부(兩府)에서 청렴한 관리를 추천하라는 왕명이 내려오자, 함유일(咸有一)을 천거하여 내시(內侍)에 소속되게 하였다.

뒤에 함유일은 공부상서에까지 승진하였다. 이듬해에 수사도 참지정사(守司徒參知政事)·판공부사(判工部事)·태자소보(太子少保), 같은 해 12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거쳐, 1146년(의종 즉위) 11월 평장사로서 치사(致仕)를 청하였지만 왕이 청렴하고 공평한데다 건강도 아직 좋으니 궤장(机杖)을 하사하며 만류하였다. 1149년(의종 3) 12월 문하시중으로 치사하였으며, 1159년(의종 13) 3월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강렬(剛烈)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한국금석문추보』(이난영, 아세아문화사,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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