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간(李柬: 1677~1727)의 본관은 예안(禮安)이며, 자는 공거(公擧), 호는 외암(巍巖) 또는 추월헌(秋月軒)이다. 아버지는 부호군 이태형(李泰亨)이고 어머니는 경주 이씨로 사정(司正) 이즙(李濈)의 딸이다.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 율곡 이이의 학맥을 이었으며,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의 한 사람이다. 1710년(숙종 36) 순무사 이만성(李晩成)에 의하여 장릉참봉(莊陵參奉)으로 천거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이후 다시 천거되어 세자시강원자의, 회덕현감 등을 거쳤다. 이후에 충청도도사, 익위사익위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이간은 주리론(主理論)의 입장에서 인물성구동론(人物性俱同論)을 주장한 주1의 대표 주자로, 한원진(韓元震)의 호론(湖論)과의 호락논쟁(湖洛論爭)을 주도한 학자로서 명성이 높았다. 사후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온양의 외암서사(巍巖書社)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며, 문집 『외암유고(巍巖遺稿)』가 전한다.
편자 이이병(李頤炳: 1711~?)은 이간의 아들로, 자는 정이(正以)이다. 어머니는 파평 윤씨로 윤헌(尹㦥)의 딸이다. 1738년(영조 14) 식년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경산현령(慶山縣令)을 지냈다. 이때 부친 이간의 문집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외암유고』는 초간본과 보각본, 그리고 중초본(中草本)이 존재한다. 초간본과 보각본은 16권 8책의 목판본이며, 중초본은 21권 10책의 필사본이다. 초간본과 보각본 중에서는 보각본이 통행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중초본은 편집 과정에서 만들어진 필사본으로 후손가에 소장되어 있으며, 편집을 위한 메모 및 첨지 등이 붙어 있다.
이이병이 이간 사후 30여 년이 지난 1760년(영조 36) 경산현령으로 재직할 때 처음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이 책에 대한 윤봉구(尹鳳九)의 문제 제기로 인해 곧바로 보각(補刻)이 이루어져 일부 내용이 보충되었으나, 보각 작업은 윤봉구의 문제 제기와는 반대 입장에서 이루어졌다.
권12는 시 170여 제(題)를 수록하였다. 권3은 소(疏)와 연설(筵說)이 수록되었는데, 「연설」은 경연 자리에서 영조(英祖)와의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권411은 서간으로, 이 중에는 스승 권상하(權尙夏)에게 보낸 편지의 비중이 가장 크다. 이간의 서간은 그의 철학적 견해를 정리한 것들이 많아 사상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권12~13은 잡저(雜著)인데 대부분 자신의 이기론(理氣論)을 설파한 것들이다. 특히 여러 편의 설(說)과 변(辨) 작품들에서 그러한 특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권14는 서(序)와 기(記)가 연대별로 정리되어 있는데, 기문은 지인들의 서재나 정자에 부친 것들이 많다. 권15는 제문(祭文), 권16은 행장(行狀)과 묘갈(墓碣)이 수록되었다. 이 중 「제백용문(祭伯用文)」은 사우(師友)와 함께 공부하고 수양하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저자의 내면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책은 이간 개인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이간이 조선 후기 낙론계의 대표 학자로서 호락논쟁을 주도한 학자임을 고려해 볼 때, 조선 후기의 정치사, 사상사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자료라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