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강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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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1820~1822년경, 김두남, 김도남 형제의 효행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고품리에 창건했던 서원.
이칭
이칭
용강사(龍岡祠), 용강정사(龍岡精舍)
유적
건립 시기
1820~1822년(추정)
관련 인물
김두남|김도남
소재지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고품1길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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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용강서원은 1820~1822년경 김두남, 김도남 형제의 효행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고품리에 창건했던 서원이다.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두남 형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했던 용강사가 전신이다. 1868년 훼철된 후 복원되지 못하였으며, 1915년 옛터 부근에 용강정사를 세워서 김두남 형제를 기렸다. 현재 용강정사 아래에 세덕사를 짓고 김두남 형제의 선대와 함께 제향하고 있다.

목차
정의
1820~1822년경, 김두남, 김도남 형제의 효행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고품리에 창건했던 서원.
내용

용강서원은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고품리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덕탄(德灘) 김두남(金斗南, 15671615)과 구봉(九峯) 김도남(金道南, 15791656) 형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했던 용강사(龍岡祠)가 전신이다.

김두남의 충절과 효행을 기리기 위해 합천의 유생들은 1625년(인조 3)에 주1을 요청하고, 1642년(인조 20)에는 정려와 포장을 요청하였다. 그 결과 1634년(인조 12) 종부시 주부에 증직되었고, 1650년(효종 1)에는 효자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동생 김도남은 동계 정온에게 수학하였으며, 조임도(趙任道), 임진부(林眞怤), 허목(許穆) 등과 교유하였다. 김도남 또한 형과 함께 효행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1711년(숙종 37) 5월 21일 경상좌도와 우도 유생 200여 명이 연명하여 서원 건립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당시 서원 건립은 어려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대미상의 「용강서원창건시 향장(鄕狀), 도장(道狀)」을 보면 향내 103명과 도내 86명의 유생들이 서원 건립을 주장하였다. 확인 가능한 서명인의 생몰년과 봉안문을 지었던 유이좌(柳台佐, 17631837)의 김해부사 재임시기[1820년 2월 1822년 5월]를 감안하면, 용강서원은 1820~1822년 사이에 건립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용강서원은 1832년(순조 32) 제작된 『경상도읍지』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1868년(고종 5) 철폐된 후 제작된 『영남읍지』[1871]에서는 확인된다. 여기에서는 용강서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용강서원은 1868년 훼철된 후 현재까지 복원하지 않았다. 서원이 있었던 곳에는 1915년 후손들이 용강정사(龍岡精舍)를 건립하였다. 당시 조긍섭이 지은 「용강정사기」에 따르면 김두남의 묘소 동쪽에 정려각이 있고, 정려각의 서쪽에 용강사(龍岡祠: 용강서원)를 건립했으며, 정려각과 용강사 사이에 매학정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용강정사가 건립되기 전에 김두남, 김도남 형제가 소요하던 매학정도 이미 철폐된 상태였다. 그래서 매학정 옛 터에 정자를 짓고, 정사라 이름한 것은 신위를 봉안하여 의례를 회복하길 바라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용강정사 아래 세덕사를 건립하여 남파 김광부를 주향으로 김로, 김숙검, 김안중, 김전 · 김헌 형제, 김전의 현손 김두남 · 김도남 형제 등을 배향하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암서집(巖棲集)』
『문소세록(聞韶世錄)』
『육효록(六孝錄)』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합천군읍지(陜川郡邑誌)』(1785)
『합천군읍지(陜川郡邑誌)』(1899)

단행본

『국학자료 목록집 74: 의성김씨 수당공 김영선가』(한국국학진흥원, 2021)
『경상남도지』(경상남도지편찬위원회, 1978)
주석
주1

벼슬아치의 공로를 인정하여 관계를 높여 주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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