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만이 남아 있다. 이 절은 962년(광종 13) 이전에 창건되었고 1011년(현종 2)에는 현종이 이곳에 이르러 연등회(燃燈會)를 베풀었으며, 1090년(선종 7)에는 범종(梵鐘)을 봉안하였는데 그 모양이 기이하고 소리가 몇 리 밖에까지 들렸다고 한다. 그 뒤 거란과 몽고의 침입 등 잦은 병란으로 폐사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려 말경에는 이 절터에 청주감영이 세워졌으며, 현재는 청주의 가장 번화가로 바뀌었다.
현존하는 유물로는 962년에 건립한 철당간이 있는데, 이 당간은 불기(佛旗)를 꽂거나 용머리 · 보륜(寶輪) 등을 장식하여 신성한 가람이 있는 곳임을 표시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철당간으로는 계룡산 갑사와 안성 칠장사(七長寺)의 것뿐인 매우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원래 30층이었던 원형 철통은 현재 20층밖에 없으며, 아래에서 세 번째 철통 외면에는 당간기(幢竿記)가 새겨져 있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즉, 전염병에 걸렸던 김예종(金芮宗)의 일가가 당간 조성의 원력(願力)을 세워 병이 나은 뒤 김예종 · 김희일(金希一) 형제가 힘을 합쳐서 조성한 것이다. 이 밖에도 절의 유지에서는 고려 초기의 귀부(龜趺) 및 각종 기와 조각이 출토되었으나 현재 그 행방은 묘연하다. 청주지방에는 이 철당간과 관련된 일화가 전래되고 있다. 예로부터 청주에는 수재(水災)가 많아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다. 어느 술자(術者)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배의 형상이 되어서 이를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이 세워졌으며, 이로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고 이름 하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