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은 장산곶(長山串)반도 좌우 해안의 용연읍과 장연읍 사이 길가에 있는 석교리 북쪽의 남산 기슭에 위치한다.
1958년 수로공사시 발견되어, 1959년 황기덕(黃基德) 등에 의해 각형토기인의 주거지 4기와 남방식 고인돌 5기가 조사되었다. 주거지는 20㎡ 내외의 방형·장방형수혈주거지로 수혈깊이는 10∼25㎝이다.
바닥은 모두 점토를 펴 다진 후 불에 구웠다. 화덕과 기둥구멍은 조사되지 않았다. 주거지 안에서는 저부가 아직 안정되어 있지 않고 일부 마연되어 있는 각형토기와 유경식석검·석부·돌끌·숫돌·대팻날·반월형석도·방추차 등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은 남방식으로 뚜껑돌 밑에 바닥은 강돌을 깔고 네 벽은 판석으로 조립해 매장시설을 만든 형태이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이 유적은 유물출토상으로 미루어볼 때 신석기시대 말기 문화층인 금탄리(金灘里) 2문화층에서 각형토기로 발전해나가는 과도기에 해당하고 있어 각형토기 조기유적(早期遺蹟)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각형토기의 기원을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생각되고 있으나, 일부학자에 의하여 전기에 편년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