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연 석교리 유적

  • 역사
  • 유적
  • 청동기
북한 황해남도 용연군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와 남방식 고인돌·각형토기 등이 출토된 복합유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영희 (국립중앙박물관, 고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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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황해남도 용연군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와 남방식 고인돌·각형토기 등이 출토된 복합유적.

내용

유적은 장산곶(長山串)반도 좌우 해안의 용연읍과 장연읍 사이 길가에 있는 석교리 북쪽의 남산 기슭에 위치한다.

1958년 수로공사시 발견되어, 1959년 황기덕(黃基德) 등에 의해 각형토기인의 주거지 4기와 남방식 고인돌 5기가 조사되었다. 주거지는 20㎡ 내외의 방형·장방형수혈주거지로 수혈깊이는 10∼25㎝이다.

바닥은 모두 점토를 펴 다진 후 불에 구웠다. 화덕과 기둥구멍은 조사되지 않았다. 주거지 안에서는 저부가 아직 안정되어 있지 않고 일부 마연되어 있는 각형토기와 유경식석검·석부·돌끌·숫돌·대팻날·반월형석도·방추차 등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은 남방식으로 뚜껑돌 밑에 바닥은 강돌을 깔고 네 벽은 판석으로 조립해 매장시설을 만든 형태이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이 유적은 유물출토상으로 미루어볼 때 신석기시대 말기 문화층인 금탄리(金灘里) 2문화층에서 각형토기로 발전해나가는 과도기에 해당하고 있어 각형토기 조기유적(早期遺蹟)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각형토기의 기원을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생각되고 있으나, 일부학자에 의하여 전기에 편년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 - 「황해도 용연군 석교리 원시유적 간략보고」(황기덕, 『문화유적 19600년』 5호, 과학원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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