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사 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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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가현[滋賀縣] 오쓰시[大津市] 엔조지[園城寺]에 있는 고려시대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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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본 시가현[滋賀縣] 오쓰시[大津市] 엔조지[園城寺]에 있는 고려시대의 종.
내용

1032년(덕종 1) 주조. 높이 77.5cm. 이 종은 현재 비와코[琵琶湖] 옆에 건립된 비와코문화관[琵琶湖文化館]에 기탁, 보관되어 있다. 고려시대 초기 범종 가운데 그 주조기술이나 문양면에서 가장 돋보이는 양식적으로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용뉴(龍鈕)는 얼굴을 구부려 천판(天板) 위에 붙은 보주를 물어올리는 형상이며, 용의 오른쪽 앞발 위로는 통일신라종에서 볼 수 없었던 또 하나의 보주를 받들고 있다. 용두는 이전보다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으나 정수리에는 높은 뿔이 솟아 있고, 윗입술이 앞으로 크게 들려 있는 점을 통해 고려종으로서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음통(音筒)은 여느 고려종에 비하여 상당히 굵은 편으로, 이곳에 층단의 구분 없이 사선형으로 장식된 연주문띠로 3단 구획한 뒤 그 내부에는 반원형의 문양을 연속 시문하였다. 특히 용뉴와 음통 주위에는 구름무늬를 섬세하게 돋을새김한 점이 주목되며, 이러한 천판상의 구름무늬는 스미요시신사[住吉神社] 소장의 10세기 범종에서부터 보이던 장식으로서 그보다는 훨씬 도식화되었다.

천판의 가장자리에는 38개로 이어진 복엽의 연판문을 유려한 부조로 둘렀다. 상대와 하대에는 현(弦)이 아래로 향하도록 배치한 반원형의 문양을 연속으로 시문하였고, 그 내부에는 연판문·보상화문·원형의 연속문을 각각 3단으로 나누어 배치하였다. 그리고 반원권 사이의 여백면에는 유려하게 굴곡진 당초문이 빽빽이 시문되었다.

이러한 문양은 또한 유곽대에도 동일하게 사용되었는데, 이곳에서는 각 현이 마주보도록 배치함으로써 유곽대가 합쳐지면 그 전체가 원형을 구성하도록 한 점이 독특하다. 유곽대 안에 장식된 종유는 8엽의 중판연화좌 위에 얕게 돌출시켰다.

각 유곽 아래의 종신면에는 당좌(撞座)와 1구의 비천상을 각각 번갈아 가며 배치하였다. 섬세한 고부조로 표현된 비천상(飛天像)은 무릎을 꿇고 몸을 약간 옆으로 누인 채 양 손으로 가느다란 가지가 달린 연꽃을 받쳐든 모습이다. 얼굴은 그다지 사실적이지 못하지만 머리 위에는 터번과 같은 보관을 쓰고 있으며 벗겨진 상반신에는 목걸이와 배 아래로 굴곡지며 흘러내린 천의(天衣)까지 세밀히 묘사되었다.

당좌는 3중권(三重圈)으로 구획되어 중앙에는 1+8+14개의 연과(蓮顆)와 그 바깥을 꽃술처럼 표현된 집사선문으로 장식하였고, 폭이 넓은 외구에는 10엽의 보상화문을 시문하였다.

한편 당좌와 비천상 사이의 종신면에는 하대와 맞붙여 별도의 장방형 명문구를 만들어 이곳에 4행 38자의 명문을 새겨놓았다. 그 내용은 ○太平十二年壬申十二月日靑鳧大寺 鐘百十七斤大匠位金慶門棟梁 梁元善十四人戶長坑賢等(태평12년임신12월일청부대사 종117근대장위김경문동량 양원선14인호장갱현등)○으로서 태평12년은 1032년이며, 청부현은 지금의 청송군(靑松郡)에 해당된다. 아울러 170근의 중량을 들여 대장(大匠) 김경문(金慶門)이라는 사람이 제작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참고문헌

『朝鮮鐘「(坪井良平, 角川書店, 1974)
「일본에 있는 한국문화재」 14(최응천, 『박물관신문』 257, 국립중앙박물관, 19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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