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외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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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정6품 중앙 행정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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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정6품 중앙 행정관직.
내용

초기에는 광평성(廣評省)과 내봉성(內奉省)에 설치되었으며, 지배체제가 정비된 성종 이후에는 상서6부(尙書六部)의 정6품 관직으로 설치되었다. 정원은 이부만 1인이고 나머지 부서는 모두 2인이었는데, 1298년(충렬왕 24) 충선왕이 즉위하여 관제를 고칠 때 각각 3인으로 증가되었다.

한편 그 명칭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으니 충렬왕 1년에 원외랑에서 좌랑(佐郎)으로, 충렬왕 24년에는 충선왕이 즉위하여 관제를 개혁하면서 다시 원외랑으로, 충렬왕 34년 원외랑에서 산랑(散郎)으로, 1356년(공민왕 5) 원외랑으로, 공민왕 11년 원외랑에서 좌랑으로, 공민왕 18년 좌랑에서 산랑으로, 공민왕 21년 산랑에서 좌랑으로 바뀌었으며, 그뒤 조선시대에는 좌랑으로 계속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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