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신라 진흥왕 때 두 원화(原花)인 남모(南毛)·교정(姣貞) 간에 얽힌 설화.
개설
내용
그 뒤 여러 해를 지나 이번에는 양가의 덕행 있는 사내를 뽑아 명칭을 화랑이라 고치고 처음으로 설원랑(薛原郎)을 받드니 이것이 화랑의 시초이다. 이때부터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선행을 일삼으니 오상(五常)·육예(六藝)·삼사(三師)·육정(六正)이 널리 행해졌다.
김대문(金大問)의 『화랑세기(花郎世紀)』에는 어진 재상과 충성된 신하가 모두 화랑에서 나오고, 뛰어난 장수와 용감한 군사도 여기에서 생겨났다고 하였으며, 최치원(崔致遠)의 「난랑비(鸞郎碑)」 서문에도 현묘의 도, 풍류의 도라고 하고 있다.
참고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 『삼국사기(三國史記)』
- 『화랑도연구』(이선근, 선광인쇄주식회사, 1948)
- 「화랑세기의 사료적 가치」(이재호, 『정신문화연구』36,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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