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헌, 병조참판, 평안도관찰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해에 정미사화(문정왕후와 이파를 비방한 벽서가 양재역에서 발견되어, 부제학 정언의의 고발로 20여명이 처형당한 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1551년 다시 기용되어 회인현감 등을 거쳐 1558년 7월 종성부사가 되었으나, 백성을 부역시켜 언전(堰田: 제방을 쌓아 만든 밭)을 개간하려는 윤원형(尹元衡)에 반대하다가 1558년 윤 7월 정주목사로 전출되었다.
1560년 광주목사(光州牧使)가 되었고, 1568년(선조 1) 호조참판으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예조참판 · 대사헌을 거쳐 1571년 병조참판 ·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평안도관찰사 재직 중에 병이 있어, 상경 도중 장단에서 죽었다. 저서로는 『구촌집』이 있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학사집(鶴沙集)』
- 『서애집(西厓集)』
- 『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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