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원(子遠), 호는 자겸와(自慊窩). 아버지는 유진태(柳鎭台)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홍현원(洪顯遠)의 딸이다. 기정진(奇正鎭)과 임헌회(任憲晦)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유대원은 조선 말기 전통적인 사대부의 한 전형으로서 개항 이후 대한제국의 성립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격동기에 복고적이고 보수적인 사대부의 긍지를 버리지 않고 외세의 침입과 세태의 변화에 완강히 저항하였다.
또한, 당시 위정자와 집권관료층의 무능, 부패, 기회주의적 속성을 신랄히 비판하는 한편, 스스로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그 기틀의 초석인 유교적 전통의 수호와 확립을 위하여 학문은 물론 실천적인 활동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예를 갖추지 못할만큼 궁핍한 사람들의 관혼상제에 비용을 대주거나 선조들의 제전(祭田)을 마련하고 친지들 가운데 궁핍한 사람들에게는 생활근거를 마련하여주기도 하였다.
과거시험 때마다 천거되기는 하였으나 강직하였던 유대원은 그 때마다 관직에 임용되지 못하였다. 1874년(고종 11) 만동묘복향사(萬東廟復享事)에 대하여 소(疏)를 올린 적이 있으며, 저서로는 『동사촬요(東史撮要)』 3권, 『유성문헌록(儒城文獻錄)』 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