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은 강로(江露). 함경남도 덕원 출신.
1909년 10월 노령 코트지로의 자택에서 아버지와 안중근(安重根)·우덕순(禹德淳)·조도선(曺道先)·김성화·탁공규(卓公奎)와 더불어 구국혁신을 맹세하는 ‘7인동맹’을 조직하였다.
1909년 10월 21일 이토[伊藤博文]가 열차편으로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체프와 회담하기 위하여 하얼빈[哈爾濱]에 오는 것을 탐지하고 도착일자가 1909년 10월 26일 아침임을 확인하여 채가구(蔡家溝)에서 대기하고 있던 안중근에게 전보를 쳐서 안중근의거를 성공할 수 있게 도왔다.
이 일로 일본경찰에 붙잡혀 1909년 11월 안중근을 비롯한 우덕순·조도선 등과 함께 여순(旅順) 감옥으로 이송되고 1910년 12월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8년 가을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던 애국청년들과 함께 볼셰비키혁명군에 가담하여 백계노군(白系露軍)의 축출활동을 하고 있을 때 이를 가장한 일본군에 붙잡혀 사말리야강으로 끌려가 총살되었다고 한다.
198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