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계의(季毅), 호는 죽리(竹里). 유대의(兪大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유희증(兪希曾)이다. 아버지는 유석(兪晳)이며, 어머니는 이계(李𡹘)의 딸이다.
1673년(현종 14) 진사가 되고,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88년 지평이 되었으나, 이듬해 기사환국으로 파직되었다. 1692년 헌부(憲府)의 요청으로 형 유명웅(兪命雄)과 같이 사판(仕版)이 삭거(削去)되었다. 이는 1689년 인현왕후가 폐위될 때 부당함을 연명으로 상소한 고(故) 참판 유헌(兪櫶)의 조카라는 이유로 남인들로부터 질시(嫉視)되었기 때문이다.
1694년 갑술옥사로 서인이 집권하자 다시 등용되어, 장령(掌令)·정언(正言)·헌납(獻納)을 거쳐 양서지방(兩西地方)과 호서지방을 암행염찰(暗行廉察)하였다.
1702년 궁가절수(宮家折受)의 폐해를 상소하여, 백성을 심히 괴롭히는 것을 모두 재감(裁減)시켜 백성들을 소생하게 할 것을 진언하였다. 1718년 도승지, 이듬해에 대사간이 되고, 1721년(경종 1) 한성좌윤·전라감사가 되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고 노론이 집권하자 이듬해 대사간·경기감사가 되었다. 1726년(영조 2) 한성판윤·예조판서, 1727년 우참찬이 되었다. 시호는 장헌(章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