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몽정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영암군수, 승정원우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경임(景任)
  • 학암(鶴巖)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
  • 본관문화(文化, 지금의 황해도 신천)
  • 사망 연도1593년(선조 2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영암군수|승정원우부승지
  • 출생 연도1527년(중종 2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중환 (전 동아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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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영암군수, 승정원우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경임(景任), 호는 학암(鶴巖). 유순행(柳順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희저(柳希渚)이다. 아버지는 감찰 유용량(柳用良)이고, 어머니는 권련(權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7년(명종 22) 사마양시에 합격한 뒤 음직으로 현감에 임명되었고, 1574년(선조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81년 영암군수로 재직 시 무예에 능하지 못하다 하여, 사간원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1587년 성주목사로 재직할 때에는 수감 중인 죄수가 옥을 부수고 도망한 사건 및 풍속의 문란을 방지하지 못하였다 하여 다시 파직당하였다. 1592년 승정원우부승지에 임명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성절사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조선의 위급한 상황을 보고하고 구원병을 요청, 명나라 군대를 끌어오는 데 공을 세웠다. 임무를 마치고 귀국 도중 병으로 죽었다.

왜란이 끝나고 공신을 책봉하는 과정에서 유몽정의 이름도 거론되었으나, 조정의 의논이 달라 선무공신에는 책봉되지 못하였다. 광해군 때 아들 유영(柳泳)이 상소하여 녹공(錄功)하여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선대의 논의를 번복할 수 없다는 이유로 추록되지 못하고 증직과 자손의 서용조처만 내려졌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사마방목(司馬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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