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 출신.
1922년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김시현(金始顯)·김지섭(金祉燮)·권정필(權正弼)·황옥(黃鈺)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의 지시에 따라 김시현·유석현(劉錫鉉)·황옥·장건상(張建相) 등이 조선총독부·조선은행·동양척식주식회사·경성전기회사 등 일제의 주요기관을 폭파하기 위하여 1923년 다량의 폭탄과 총기를 만주로부터 국내에 반입하였다.
이 때 부족한 거사자금은 국내에서 조달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유시태(柳時泰)와 함께 서울 내자동의 이인희(李麟熙)에게 군자금 5,000원을 요구하였으나, 그와 같이 막대한 자금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며 이를 거절하자, 먼저 50원을 받고 잔액은 후일 받기로 하였다.
그 뒤 같은 달 21·24일에 유시태가 남영득(南寧得)과 함께 이인희의 집에 찾아가 군자금 잔액을 독촉하다 일본경찰에 의하여 이른바 ‘의열단군자금사건’에 연루된 12명의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그 해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