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다가 발각되어 체포된 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의 지시에 따라 김시현·유석현(劉錫鉉)·황옥·장건상(張建相) 등이 조선총독부·조선은행·동양척식주식회사·경성전기회사 등 일제의 주요기관을 폭파하기 위하여 1923년 다량의 폭탄과 총기를 만주로부터 국내에 반입하였다.
이 때 부족한 거사자금은 국내에서 조달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유시태(柳時泰)와 함께 서울 내자동의 이인희(李麟熙)에게 군자금 5,000원을 요구하였으나, 그와 같이 막대한 자금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며 이를 거절하자, 먼저 50원을 받고 잔액은 후일 받기로 하였다.
그 뒤 같은 달 21·24일에 유시태가 남영득(南寧得)과 함께 이인희의 집에 찾아가 군자금 잔액을 독촉하다 일본경찰에 의하여 이른바 ‘의열단군자금사건’에 연루된 12명의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그 해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독립운동사』 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 「민족운동으로서의 의열단의 활동」(김창수, 『3·1운동50주년기념논집』, 동아일보사, 1969)
- 『동아일보』(1923.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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