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사익(士翼). 아버지는 방어사 유달원(柳達源)이다.
1804년(순조 4) 식년 무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자, 개천군수로 임명되어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상을 받았다.
다른 죄로 인하여 더 승진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다가, 다시 선치에 힘썼기 때문에 승진하여 1826년에 황해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833년에는 양주목사를 지내고 이듬해 우포도대장을 거쳐, 1835년(헌종 1) 총융사가 되었다.
1844년 다시 우포도대장을 역임하고 이듬해 다시 총융사가 되었으며, 1850년(철종 1) 훈련대장이 되었다. 1856년 형조판서가 되었고, 이듬해 국왕이 인릉(仁陵)에 거둥할 때 배왕대장(陪往大將)으로 참여하였었다. 무예에 아주 뛰어나서 당시에 ‘가장비(假張飛)’라고 불렸다. 시호는 무숙(武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