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손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도승지, 이조참판,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농암(聾巖), 회헌(檜軒)
  • 효숙(孝叔)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450년(세종 3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동부승지|도승지|이조참판|예조참판
  • 출생 연도1398년(태조 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범 (전 인간문화재,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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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도승지, 이조참판,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효숙(孝叔), 호는 회헌(檜軒) 또는 농암(聾巖). 유습(柳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극서(柳克恕)이다. 아버지는 직제학 유빈(柳濱)이며, 어머니는 윤방익(尹邦益)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19년(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26년(세종 8) 식년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하였다. 그 뒤 검열을 거쳐, 감찰·수찬을 역임하였다. 1436년 문과 중시에 급제하고 직제학에 올랐다. 동부승지를 거쳐 도승지가 되었으나 학문에만 능할 뿐, 과단성이 결여되어 사무처리는 좌부승지인 황수신(黃守身)에게 맡겨서 처리하게 하였다.

1447년 이조참판 역임 시 동반직(東班職)에 있던 우부승지 김유양(金有讓)의 아들을 잘못 서반직(西班職)에 옮겨놓은 죄로 파직되었다.

그 뒤 다시 예조참판으로 기용되었으나 그때 상을 당함으로써 몸이 쇠약해져 관직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세종이 고기를 하사하여 보신을 시켰다. 그러나 끝내 병으로 사직하고 말았다. 문장에 능하였다. 저서로는 『회헌일고』가 있다.

참고문헌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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