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순경(舜卿), 호는 벽서(碧棲)·우록(友鹿). 충청남도 보령 출신. 진사 유형중(柳馨仲)의 아들이다.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납세를 거부하고 을사오적과 일본의 침략행위를 공박하여 투옥되기도 하였다. 1906년 5월 전 참판 민종식(閔宗植)이 홍산지치(鴻山支峙)에서 거의하자 그 휘하에 들어가 홍주성을 함락한 뒤 유병장(儒兵將)과 참모에 임명되었다.
5월말 홍주성이 함락될 때 일본군에게 잡혀 무기형을 언도받고 남규진(南奎振) 등 8인의 동지와 함께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그뒤 최익현이 유배되어오자 척사사상을 논하고, 우국시로 화답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자 백관형(白觀亨) 등 10여명과 함께 상경하여 순종의 복위운동을 꾀하던 중 일본경찰에 잡혀 그해 11월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파리강화회의에 보내는 ‘파리장서’에 유림대표 137인 중 1인으로 서명하였으며, 일반유림인사의 안이한 수사선도(守死善道)에 반대하고 적극적인 독립투쟁 전개를 역설하였다.
문집 『마도일기(馬島日記)』는 홍주의진의 활약과 대마도유배지에서의 생활을 일기체로 서술한 것으로 의병운동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