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이항로의 학설을 따르는 화서학파로 활동하였으며, 유인석의 의병운동을 가까이서 뒷받침해주었던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유중악은 “마음이 본성의 주재가 된다(心爲性宰).”는 자신의 심성설을 김평묵에게 제시하여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유중악은 마음이 감정을 주재할 때 본성을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주재한다는 인식에 따라, “마음은 본성으로써 주재한다(心以性宰).”는 명제로 보완하였다. 유중악은 ‘마음이 본성으로써 주재하는 것’을 ‘임금이 예악(禮樂)으로써 주재하는 것’에 비유하였다. 임금이 예악을 준칙으로 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것처럼 마음은 본성을 준칙으로 삼아 주재한다는 것이다.
유중악은 성학(聖學)을 ‘널리 글을 배우는 것(博文)’과 ‘예법으로 요약하여 행하는 것(約禮)’의 두 가지로 파악하여 도학의 학문적·실천적 성격을 선명하게 확인하고 있다. 또한, 바르고 공변된 ‘성현의 학문(유학)’과 사특하고 사사로운 ‘이단(노장·불교·기독교)’을 대립시키면서 도학의 정통주의에 따라 배타적인 한말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으로 일관하였다.
왕비가 왜병에 의해 살해된 을미사변 이후에는 토적(討賊)을 위해 의거를 주창했으며, 유중악 자신은 의병에 뛰어들지 않았지만 유인석을 가장 가까이서 뒷받침해 주었다. 정부가 의병을 불법화시켜 공격하고 개화 정책을 추진하자, 당시의 정부 관료를 오랑캐와 같은 적당(賊黨)이라 비판하였다. 또한, “의리에 옳지 않은 것은 임금의 명령이라도 구차스럽게 따를 수 없다.”며, 변복령이나 황제의 칭호, 광무(光武) 연호 등을 거부하였다.
참고문헌
- 『성재집(省齋集)』
- 『의암집(毅庵集)』
- 『유학근백년』(금장태·고광직, 집문당,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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