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각료문제와 출신 지역별 계열간의 갈등이 첨예화되어 국민대표회가 소집되는 등 위기가 고조되었다.
즉, 권성근(權聖根)에 의하여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위임통치의 부당성이 통박된 것을 계기로 이승만과 임시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이 제출되고, 이에 대한 국민의 견해를 묻는 국민대표회 구성을 위한 박용만(朴容萬)·신숙(申肅) 등 5명의 준비위원이 선출되었다.
이어 조완구(趙琬九)·윤기섭(尹琦燮) 등의 임시정부 및 대통령 지지성명이 발표되고, 반대파는 정구단(正救團)을 조직하여 이승만을 탄핵하였다.
이 때 김보연(金甫淵) 외 5명이 독립운동단체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주축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회원 50명과 함께 이 단체를 조직하여 회장으로 김보연을 추대하고,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무엇보다 시급한 이 때에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내용의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임시정부의 적극 옹호와 지지를 호소하는 한편, 임시정부 유지를 위한 각종의 의무를 실행할 것과 독립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유지사는 프랑스조계 장안리(長安里) 275번지 김보연의 거처를 연락처로 삼고, 5명의 간부와 협조하에 함영구락부(含英俱樂部)·흥사단·민단 등 재상해한인단체와 상호보완적 활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