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유(伯兪). 고양 출신. 유덕장(柳德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일기(柳一基)이다. 아버지는 유위진(柳威鎭)이며, 어머니는 조원(趙愿)의 딸이다. 유영진(柳榮鎭)에게 입양되었다.
1774년(영조 50) 유학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문한관을 거쳐 장령(掌令)에 올랐으나 한때 면직되었다. 1785년(정조 9) 지평 이청(李晴)의 상소에 의하여 복직되었다. 같은해 왕에게 상소를 올려 영남지역에 천주교가 널리 유포되어 천당·지옥의 설로 혹세무민하고 있으니, 이를 금지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뒤에도 당쟁과 시정(時政)의 폐해를 논하다가 한때 파직되었고, 헌납(獻納)으로 이주석(李周奭)의 일을 논하다가 흑산도에 유배되었는데, 좌의정 채제공(蔡濟恭)도 이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 1812년(순조 12)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이어서 부호군·호군·형조판서·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