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흥(高興). 강원도 춘천 출신. 의병대장 유인석(柳麟錫)의 아들이다.
1896년 을미의병의 자진해산 후 국내에서의 의병운동의 한계성을 타개하고자 유인석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07년 귀국하여 유인석의진에서 의병장의 비서직을 맡아 아버지를 보좌하는 한편, 의병활동에 투신하였다. 군대해산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어가던 정미의병을 규합하던 중 일본군의 기습방화공격을 받아 변장하고 탈출하였다.
항일의병운동을 시종 총지휘하던 부친 의암은 국내에서의 의병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해외기지 건설을 목적으로 1908년 고국을 등지고 러시아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의암은 최재형(崔在亨)·이범윤(李範允)·이상설(李相卨)·안중근(安重根) 등 제의사들과 해외무력항쟁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었다.
1910년 이후 러시아에서 성명회(聲明會)를 조직하다가 국사범으로 체포령이 내려져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5년 유인석이 죽을 때까지 유인석의 독립운동을 보좌하였으며, 그뒤 의병장 박장호(朴長浩)를 보좌하여 해외독립운동기지 구축에 진력하였다.
또한, 1919년 남만주에서 결성된 대한독립단의 총재비서직을 맡아 활동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이 수여되었고, 1990년 애국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