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사헌부장령, 좌승지,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후 계속 경직(京職)에만 머물러 사헌부장령·집의를 역임하였는데, 이 시기에 대제학 김귀영(金貴榮)의 천거를 받아 출세를 거듭할 수 있었다. 1581년 형조참판으로 동지사(冬至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나, 가지고 간 방물(方物) 중 면주(綿紬) 10필과 흑마포(黑麻布) 11필이 부족하여 처벌, 파직되었다.
그 뒤 재기용되어 한직에 머물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첨지중추부사로서 왕을 호종하여 좌승지로 발탁되었다. 이듬해 동지중추부사, 그 다음해에 예조참판이 되었고, 이 때 영의정 유성룡(柳成龍)과 함께 상소하여 세자 광해군으로 하여금 군국기무(軍國機務)를 관장하도록 청하였다.
1597년 동지돈녕부사가 되었고, 사망한 뒤인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록되어 문양군(文陽君)에 봉하여졌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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