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에 수많은 사람이 살던 시절, 신라의 35금입택(金入宅)에서처럼 1,000여명이 넘는 식구가 살던 때에는 그들을 먹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곳간을 두고 주식을 해결하여야 하였고, 그들이 사냥해온 동물들을 잡아 보관하였다가 부식으로 공급하기도 하였다.
그럴 때에 육고의 설비는 반드시 있어야 하였다. 기록에는 명기되어 있지 않지만 고구려사람들의 생활의 단면을 볼 수 있다고 인정되는 고분벽화에는 육고의 형상이 묘사되어 있다.
그 중 안악 제3호분의 벽화에 보이는 육고는 우진각 기와지붕의 단칸 규모의 독립 건물이다. 층층다리를 딛고 올라가게 된 높직한 댓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공간을 형성하였는데, 이 집의 구조는 옆에 그려져 있는 방앗간 · 외양간 · 수렛간들이 댓돌이 없는 건물인 데 비하여 고상형(高床形)이다. 어쩌면 아랫 부분의 통풍이 고려된 구조였을지도 모르겠다. 건물 내부에 횃대를 매고 쇠줄을 늘였고, 그 쇠줄에 갈고리에 꽂은 짐승들을 걸어 공중에 매달리게 하였다. 현대의 푸줏간 풍경과 흡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