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각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병조참판, 삼도수군통제사, 총융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여성(汝誠)
  • 시호충민(忠愍)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신축옥사
  • 본관함안(咸安)
  • 사망 연도1724년(경종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전라도수군절도사|병조참판|삼도수군통제사|총융사(摠戎使)
  • 출생 연도1665년(현종 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유병용 (강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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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병조참판, 삼도수군통제사, 총융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여성(汝誠). 아버지는 진사 윤익상(尹翊商)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99년(숙종 25)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고, 비변사낭관(備邊司郎官)·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초계군수(草溪郡守) 등을 역임하고, 전주영장(全州營將)을 거쳐 전라도수군절도사에 이르렀다.

1710년 해구(海寇)의 발호가 심해지자 대신 이이명(李頤命)의 특천을 받아, 1711년 금위중군(禁衛中軍)이 되어 방어에 공을 세웠다.

1712년에 함경남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청나라 사신과 함께 백두산의 경계를 사정하고, 백두산 남쪽 산천의 형태를 그려 올렸다. 1720년(경종 즉위년) 병조참판에 전임되고, 이어 삼도수군통제사를 거쳐 총융사(摠戎使)가 되어 상벌(賞罰)이 엄명하여 군기가 확립되었다.

1721년 신축옥사에 관련되어 절도(絶島)에 안치되어 여러 해 동안 구금되었고, 1724년 의금부에 투옥, 장살(杖殺)되었다.

영조가 즉위하여 신원(伸寃)되자, 아내 김씨는 “내가 진작 죽지 않은 것은 오직 하늘을 기다리기 위함이었다.”고 말하고는 드디어 단식하다 죽으니, 영조는 그녀의 절개를 표창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참고문헌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도암집(陶菴集)』(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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