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은 병정(柄政). 경상북도 예천 출신. 1909년 예천에서 거의(擧義)하여 의병대장 이강년(李康秊)의 지휘 아래 풍기·순흥·영주 등지에서 유격전에 참가하여 일본관헌을 기습, 우군의 작전을 유리하게 전개하였다.
또한, 의병장 이강년이 죽은 뒤 최성천(崔聖天)·한명만(韓明萬)·김상태(金尙台)·정경태(鄭敬泰) 등의 의진과 더불어 소백산일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1909년부터 1910년에 걸쳐 최성천·한명만·김상태 등과 군자금 조달의 명령을 받고 여섯 차례에 걸쳐서 일본인 및 친일분자의 집을 급습하여 살해하거나 금품을 탈취하는 등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1911년 1월 일본경찰에 붙잡혀 살인강도죄로 송치되어 1심·2심·3심 모두 사형으로 판결되어 그해 3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