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평(海平)이며, 해평윤씨의 시조(始祖)이다.
1257년(고종 44) 원주에서 안열(安悅) 등이 고성(古城)에 웅거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장군으로서 낭장 권찬(權贊)과 함께 파견되어 원흥창(元興倉)에서 적을 크게 파하고 난을 진정시켰다.
1269년(원종 10) 우복야(右僕射)를 거쳐 2년 후 좌복야로서 사공(司空) 전빈(田份)과 함께 부위병(府衛兵)을 사열하고 부족한 인원을 충원하였다. 1273년 수사공 상서좌복야 판공부사(守司空尙書左僕射判工部事)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