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예조좌랑, 제천현감,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36년 병자호란 때 사간원정언으로 척화의(斥和議)를 진계(陳啓)하였고, 그 해 12월 청나라가 침입하자 아버지를 따라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가(扈駕)하였다.
그 뒤 동부승지·호조참의·경주목사·홍문관부제학·대사헌·이조참판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응하지 않았다. 윤문거는 『근사록(近思錄)』과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등을 가까이 하면서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또 글씨에도 뛰어났는데, 특히 해서를 잘 썼다.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연산(連山)의 구산서원(龜山書院), 노성(魯城)의 노강서원(魯岡書院), 석성(石城)의 봉호서원(蓬湖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석호유고(石湖遺稿)』 3권이 있다. 시호는 충경(忠敬)이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명재유고(明齋遺稿)』
- 『석호유고(石湖遺稿)』
- 『효종실록(孝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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