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신중(神衆)은 불법(佛法)을 수호하고 수행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은 다양한 신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부처의 가르침과 불법을 수호하며, 사찰에서 진행되는 법회나 불교 의식 시에 봉청(奉請)되어 도량을 외호하거나 신앙의 대상으로 모셔진다. 신중에는 사천왕, 제석천, 범천, 용왕 등 다양한 신들이 포함되며, 『법화경』, 『화엄경』, 『금강경』, 『금광명경』 등 각 경전에서 등장하는 신중의 구성은 다소 상이하지만, 이들은 불법의 수호자이자 청법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나라의 신중 신앙은 『화엄경』에 등장하는 39위 신중에서 그 연원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신중탱화의 표현 대상은 경전에 나오는 신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과 종교의 토속신들을 포함하며, 후대에는 역사적 인물까지 포용하는 등 신중의 범위는 가변적이다.
조선 시대에는 사찰 내에서 불교 의식을 행하거나 전각에 신앙의 대상을 봉안할 때 ‘삼단분단법’(三壇分壇法)을 적용하였다. 삼단은 상단(上壇), 중단(中壇), 하단(下壇)으로 나뉘며, 일반적으로 상단은 불보살단(佛菩薩壇), 중단은 호법선신중단(護法善神衆壇), 하단은 영단(靈壇)으로 구성되었다. 신중탱화는 중단에 범주에 포함된다.
불화에서 ‘신중탱화’라는 용어는 19세기에 이르러 정착되었으며, 17세기까지는 제석천과 그 권속을 묘사한 ‘ 제석탱화’가 주로 그려졌다. 제석천도는 제석만을 단독으로 그린 경우도 있고, 제석과 범천이 함께 그려지기도 하였다. 18세기 전반에는 제석천도와 한 쌍을 이루는 ‘청룡탱화’가 등장했으며, 천룡탱화에서는 무장을 한 신장상이 중심으로 묘사되었다. 초기에는 이 중심 신장이 특정 인물로 상정되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1으로 정착되었다. 주변에는 사천왕, 팔부중 등이 배치되었다. 18세기 후반부터는 제석탱화와 천룡탱화가 하나의 화면에 상하 또는 좌우로 배치되었고, 이를 ‘제석천룡합위탱화(帝釋天龍合位幀畵)’라 불렀다. 이때 제석 중심의 권속을 그리는 부분에는 제석 단독, 제석과 범천 외에 대자재천(大自在天)이 함께 도상화되기도 하였다. 19세기 들어서는 ‘신중’이라는 포괄적 개념이 정착되었고, 신중탱화가 명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민간 신앙에서 모셔지던 산신(山神)과 조왕신(竈王神) 등이 신중도에 유입되어 주요 신격으로 자리 잡았으며, 동시에 명왕부(明王部)의 도상도 신중탱화에 포함되었다. 명왕부의 중심 신격은 예적금강(穢跡金剛)으로, 그를 호위하는 8금강(八金剛)과 4보살(四菩薩)이 함께 묘사되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 조성된 신중탱화에서는 관우와 같은 역사적 인물 뿐만 아니라, 대한제국 시기의 관리나 일본 순사들이 등장하기도 하며, 이는 당대의 역사적 · 문화적 변화를 반영한다.
신중은 불법을 수호하고 수행자를 보호하는 다양한 신들을 지칭하며, 불교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선 시대에는 사찰에서 삼단분단법이 적용되었고, 중단에 신중탱화가 봉안되었다. 신중탱화는 18세기 후반에 등장하여 19세기에 정착되었으며, 초기에는 제석천과 위태천이 중심이었고, 사천왕과 팔부중이 함께 묘사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민간 신앙의 산신과 조왕신, 명왕부의 도상도 신중탱화에 포함되며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당대의 역사적, 문화적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신중탱화는 종교적 신앙 뿐만 아니라 시대적 변화를 담아내는 중요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