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석탱화는 고려와 조선시대, 불교의 호법신인 제석천을 그린 불화이다. 제석천은 인도의 인드라 신이 불교에 수용된 후 호법신으로 자리 잡았으며, 한국에서는 환인과 동일시되며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고려 후기부터 제석 신앙이 성행하며 제석탱화가 제작되었고, 조선 전기에는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불화로 그려졌다. 이후 조선 후기에 제석천은 범천과 함께 묘사되거나 천룡탱화에 포함되는 등 도상이 변화하며 20세기 초까지 이어졌다.
제석천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격인 인드라(Indra)가 불교에 수용되어 호법신으로 자리 잡은 천신이다. 불교의 우주관에서 삼천대천세계의 최소 단위인 1수미세계에서, 수미산 정상의 도리천(忉利天)을 주관하며 주1에 머무는 존재로 묘사된다. 제석천은 한국에서 단군신화의 환인(桓因)과 동일시되며,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고대부터 이어진 제석 신앙은 불교의 확산과 함께 독립적으로 분화되었다. 고려 후기에는 내제석원과 외제석원이 설립되고 제석도량(帝釋道場)과 제석재(帝釋齋)와 같은 의례가 성행하였다. 이러한 신앙의 확산은 불교 미술에서도 반영되어, 제석천을 그린 탱화가 등장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 쇼타쿠인[聖澤院]에 전하는 고려 후기의 제석탱화가 있다. 이 시기의 제석천은 화려한 용과 봉황이 장식된 의자에 앉아, 선견성이 그려진 부채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선견성이 그려진 부채는 제석천의 상징적 주2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선 전기에도 제석천도는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목적에서 제작되었으며, 대표적으로 1483년 정희왕후, 소혜왕후, 인순왕후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그려진 삼제석천도가 일본 에헤지[永平寺]에 전한다. 16세기에도 제석탱화가 꾸준히 제작되었으며, 일본 젠가쿠지[善覺寺]와 사이다이지[西大寺]에 각각 1583년과 16세기에 그려진 제석탱화가 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제석천의 도상은 점차 변화하여, 제석천과 범천이 함께 그려지거나, 신장상들이 포함된 천룡탱화와 결합하여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독립된 제석탱화는 20세기 초까지 제작되었으나, 점차 신중탱화의 한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제석탱화는 고려 후기부터 조성된 호법선신도(護法善神圖)로, 인도 신화의 천신이 불교에 수용된 후 한국의 전통적인 천신신앙과 결합하여 발전된 불화이다. 제석탱화는 조선후기 신중탱의 도상적 원형이다, 제석탱화는 신장상들의 무리를 그린 천룡탱화와 결합하면서 좀더 복합적인 체계를 형성하고, 조선 후기 신중도로 발전한다. 이와 같은 도상의 변형과 발전은 조선 불화의 독특한 미술사적 흐름을 형성하며, 불화 양식의 다양성과 독자성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