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와 조선시대, 불교의 호법신인 제석천을 그린 불화.
내용
고대부터 이어진 제석 신앙은 불교의 확산과 함께 독립적으로 분화되었다. 고려 후기에는 내제석원과 외제석원이 설립되고 제석도량(帝釋道場)과 제석재(帝釋齋)와 같은 의례가 성행하였다. 이러한 신앙의 확산은 불교 미술에서도 반영되어, 제석천을 그린 탱화가 등장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 쇼타쿠인[聖澤院]에 전하는 고려 후기의 제석탱화가 있다. 이 시기의 제석천은 화려한 용과 봉황이 장식된 의자에 앉아, 선견성이 그려진 부채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선견성이 그려진 부채는 제석천의 상징적 도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선 전기에도 제석천도는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목적에서 제작되었으며, 대표적으로 1483년 정희왕후, 소혜왕후, 인순왕후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그려진 삼제석천도가 일본 에헤지[永平寺]에 전한다. 16세기에도 제석탱화가 꾸준히 제작되었으며, 일본 젠가쿠지[善覺寺]와 사이다이지[西大寺]에 각각 1583년과 16세기에 그려진 제석탱화가 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제석천의 도상은 점차 변화하여, 제석천과 범천이 함께 그려지거나, 신장상들이 포함된 천룡탱화와 결합하여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독립된 제석탱화는 20세기 초까지 제작되었으나, 점차 신중탱화의 한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홍윤식, 『한국 불화의 연구』(원광대학교 출판국, 1980)
논문
- 안지원, 「고려시대 제석신앙(帝釋信仰)의 양상과 그 변화」(『국사관논총』 78, 국사편찬위원회, 1997)
- 이승희, 「당진 성당사 제석천도 연구」(『인문과학연구』 28,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9)
- 이승희, 「조선후기 신중탱화 도상의 연구」(『미술사학연구』 228·229, 한국미술사학회, 200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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