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1892년에 대웅전 후불탱화 및 감로도와 함께 중단탱으로 제작되었다. 여흥 민씨(驪興 閔氏) 가문의 핵심 인물인 민영휘(閔泳徽)의 아버지 민두호(閔斗鎬)가 시주하여 제작된 불화이다. 민두호는 당시 춘천부 유수(留守)로 재임 중이었으며, 장수와 제액 소멸, 현실에서의 안락한 삶과 사후 정토왕생을 기원하며 이 불화를 시주하였다. 불화의 제작은 당시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화승들인 영명천기(永明天機), 금곡영환(金谷永煥), 명응환감(明應幻鑑) 등이 담당하였다. 200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세로 197㎝, 가로 400㎝ 크기의 면 바탕에 상하 2단의 화면을 구성하였다. 상단에는 삼장보살과 제 권속이, 하단에는 좌우 주1 및 권속들이 묘사되어 있다. 화면 중앙의 천장보살(天藏菩薩)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원문이 그려진 붉은색 옷을 걸친 모습이다. 불단의 양옆에는 진주보살(珍珠菩薩)과 대진주보살(大珍珠菩薩)이 자리 잡고 있다. 화면 우측의 지지보살(持地菩薩)의 모습은 천장보살과 유사하며, 보처에는 두 명의 신장상이 표현되어 있다. 이는 18세기 이후 지지보살 좌우에 천녀형의 보살을 배치하는 전통적 도상에서 벗어난 형태이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왼손에 보주를 들고 설법인의 자세를 취하며, 그 아래에는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한다. 그 주변에는 시왕, 판관, 사자, 옥졸 등이 둘러싸고 있다.
삼장보살도는 조선 후기 수륙재(水陸齋) 의식과 관련하여 중단탱으로 정립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중심 전각의 중단에 봉안되었다. 이 불화는 조선 후기 삼장보살도의 전형적인 구성을 따르면서도 일부 도상적 변화를 보여준다. 특히, 지지보살 보처에 신장상이 배치된 것은 조선 후기 삼장보살도의 도상적 근거를 마련한 『범음산보집(梵音刪補集)』을 따르지 않은 사례로, 이는 점차 신중도가 중단 봉안 불화로 자리 잡으면서 생겨난 변화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