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석은 천제석(天帝釋) 또는 석가데바인드라(釋迦提婆因陀羅, Sakro devanam Indrah)라고도 하며, 벼락을 신격화한 것이다. 벼락과 쇠갈고리, 인드라망을 무기로 하여 천계(天界)와 지계(地界)를 장악하며 일체의 악마를 정복하는 신으로서, 우파니샤드 시대에 이르러 아수라(阿修羅)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모든 신을 주재하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불교가 성립되면서부터 불교 속으로 수용된 제석은 도리천(忉利天)의 선견성(善見城)에 살면서 여러 천중(天衆) 및 사천왕을 거느리고 호법(護法)·권선(勸善)·호세(護世)의 천신(天神)으로서 모든 신중의 으뜸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제석신앙이 성행하여 삼국시대 백제에서는 제석사가 창건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왕실을 중심으로 제석도량(帝釋道場)과 제석재(帝釋齋)가 호국적인 법회로서 개최되었다.
중앙에 보살형의 제석천이 의자에 앉아 있고 주위에는 주악천인을 비롯한 천부(天部)의 여러 선신(善神)들과 일천자(日天子), 월천자(月天子)가 둘러싸고 있는 형식을 취한다. 제석은 정면향을 하고 두 손으로 비스듬히 연꽃을 들거나 두 손을 가슴 부근으로 모아 수인의 형태를 취한 것, 합장한 것 등 형태가 다양하다. 고려시대부터 제석도가 제작되었는데, 일본 쇼타쿠인(聖澤院)소장 제석천도(고려)는 두 손으로 부채를 들고 의자에 앉아있는 제석을 그렸다. 제석은 보관을 쓰고 용봉(龍鳳)머리 장식이 화려한 의자에 앉아 정면을 향하였으며, 온 몸에는 화려한 영락을 걸치고 금니의 원문이 그려진 붉은 하의 위에 여러 겹의 옷을 걸쳤다.
조선전기에도 고려시대 제석도의 전통을 이어받아 제석도가 조성되었는데 이 시기의 제석도는 한 화면에 많은 인물들이 배치되는 군도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본 젠가쿠지(禪覺寺)소장 제석천도(1583년), 일본 사이다이지(西大寺)소장 제석도(16세기)에서 보듯이 중앙의 의자에 앉아있는 제석을 중심으로 좌우에 적게는 6위, 많게는 40위의 권속들이 제석을 에워 싸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며, 일본 에헤지(永平寺)소장 삼제석천도(1483년)처럼 3위의 제석천을 함께 그린 삼제석도(三帝釋圖) 형식도 있다.
조선후기에는 3존도, 5존도, 7존도, 군도형식 등 다양한데, 제석천과 일궁천자, 월궁천자를 중심으로 표현한 3존도 형식은 18세기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3존도 형식에 두 보살을 더한 오존도 형식은 가장 많이 남아있으며 전국적으로 그려졌다. 5존도 형식에 관을 쓴 천자 2구를 더한 7존도 형식은 동화사 제석천도(1728년)가 대표적인데, 병풍을 배경으로 제석천과 권속들을 좌우대칭으로 배치하였다. 군도형식은 해인사 길상암 제석천도(1893년)에서 보듯이 중앙의 제석천 주위로 보다 많은 권속들이 배치된 것으로, 당진 성당사 제석천도(18세기)에서도 볼 수 있다. 제석천도는 천룡도와 한 쌍으로 그려진 경우가 많다. 흥국사(1741)와 통도사(1741)의 신중도는 제석과 천룡을 각각 1폭으로, 해인사 신중도(1769)는 한 폭 안에 제석과 천룡을 독립된 그림처럼 그렸다. 대흥사소장 제석도(1847)는 범천도와 한 쌍으로 제작되었는데, 많은 권속들이 제석천과 범천을 향하여 시립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으며, 권속 각각에 명칭을 적어놓아 신중도의 도상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